31 Dec. 2010
Bon anniversaire, Mon cher
파벨리온 생일 기념글
- 생일 축하합니다. 리온 에비히 경, 파벨 헤이트레드 도련님.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그런 메시지가 적힌 카드와 함께, 롤케이크가 기사단으로 배달되어 온 것은 12월 31일 오전이었다.
그 우편물을 받은 것은 파벨 헤이트레드가 아니라 리온 에비히로, 여차하면 대체 누가 보낸 것인가 고민하게 되는 우편물이 되었을 법했으나 리온은 그것을 누가 보냈는지 금세 간파할 수 있었다. 파벨에게 '도련님'이라고 하는 사람은 이 세니스국 천지에 딱 한 사람 뿐이다. 리온은 그를 만난 적이 있었다. 작년 생일에 그의 집에 초대되었던 것이다.
크게 관련이 없는 사람이 자신의 생일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은 꽤나 기분이 기이했다. 물론 엄밀히 말하자면 관련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직 한 손에 꼽을 정도로도 못 만난 사람인데.
리온은 시계를 보았다. 아직 10시가 채 되지 않았다. 조금 이른 것 같기도 하지만 이 때쯤엔 일어나 계시겠지, 하고 방을 나섰다. 적월 기숙사로 향하는 길은 조금 쌀쌀하긴 했지만 햇빛이 잘 들어 생각보다 그렇게 춥지는 않았다.
파벨의 방 커튼은 닫혀 있었다. 아직 안 일어났나 싶어 고개를 기웃거리다가 기숙사 안으로 들어가 그 방의 문을 똑똑 두드리면, 안쪽에서 '누구야, 잠깐만 기다려.' 하는 외침이 났다. 그 말대로 잠깐만 얌전히 기다리고 있으니 곧 문이 열렸다. 단복을 정말 '대충' 걸친 파벨이 문 사이로 고개를 내민 것에 눈을 동그랗게 뜨면, 그는 멋쩍은 얼굴을 했다. 아까의 그 외침에 짜증이 좀 섞여 있었다는 것을 부정하지 못해서일 것이다. 하지만 리온은 그런 것에는 신경쓰지 마라는 듯 평소같이 인사를 건넸다.
"안녕, 좋은 오전이에요. 파벨 경. 생일 축하해요."
"안녕, 리오. 생일 축하한다."
그런 그의 입꼬리가 조금 꿈틀거리는 것을 봐서 웃는 모양이다. 기분이 좋으신가봐. 리온은 그를 향해 환히 웃었다. 서로 생일을 축하하는 것으로 인사를 거의 대신하다시피 하는 것이, 세상의 연인들 중 몇이나 할 수 있는 일일까. 괜시리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파벨은 그의 미소에서 눈을 한참 동안이나 떼지 못 했다. 저 웃음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리온을 신경쓰게 된 것도, 고백하게 된 것도, 더 좋아하게 된 것도.
뭘 새삼스럽게 이런 걸 떠올리나 싶어 더욱 멋쩍어진 파벨은 주제를 돌려보고자, 문을 좀 더 열고 방 안 쪽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들어올래?"
"아, 아뇨. 사실은-"
그러면서 리온은 방 안쪽을 눈으로 살짝 훑었다. 파벨이 거의 열어놓은 문 틈을 막다시피 서 있어서 잘은 보이지 않았지만 약간 책상 위가 지저분한 것만큼은 잡아낼 수 있었다. 뭐가 저렇게 지저분할까, 하고 고민을 하고 있던 리온은 파벨이 말없이 자신을 내려다보는 것을 깨닫고 그와 시선을 맞췄다.
"사실은 뭐? 왜 말을 하다 마냐."
"아, 맞다. 사실은 어윈 씨가……"
"형수가?"
"케이크를 보내주셨어요."
"아."
꽤 빠르게 진행된 대화에서 결국 얻을만한 것은 '형수가 케이크를 보냈다' 였는데 파벨은 그 말에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을 거듭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리온이 수줍게 웃으면서 "함께 먹어요." 하고 덧붙이자 좋아해도 될 것 같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래. 잠깐만 기다려."
리온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파벨은 잠깐 들어갔다 나왔다. 나왔을 때의 그는 들어갈 때의 생김새와는 다르게 말끔했다. 풀어헤쳐져 있던 단복도 깔끔하게 다 잠그고 나온 것이다. 가자, 하고 먼저 앞선 파벨이 리온의 방으로 향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남의 기숙사에 들어가는 파벨의 뻔뻔함은 이젠 거의 해가 동쪽에서 뜨는 것과 같은 이치로 생각되어질지도 모르겠다. 리온은 자신이 뻔히 보고 있는 데서 자신을 내려다보며 제 방문을 똑똑 두 번 두드린 다음에 리온에게서 열쇠를 받아 문을 덜컥 여는 파벨을 바라보고 있다가 총총 따라 들어갔다. 그래도 남의 방에 들어가는 것에 예의를 갖추려는 노력인 것 같은데…… 어쩐지 그 모습이 우습고도 귀여워 보여서, 리온은 웃었다. 물론 귀엽다고 생각한 것은 평생 비밀이다. 파벨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알 수가 없었다.
파벨은 그 방이 꼭 자기 방인 마냥 테이블에 가서 턱 앉았다. 리온은 '뭐 하냐, 빨리 와서 안 앉고.' 라는 얼굴로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파벨에게서, 케이크가 그래도 좀 기대된다는 눈치를 알아채고 얼른 케이크를 가져왔다. 맞은 편에 있는 파벨의 눈이 아주 잠깐 번뜩인 것도 같다.
"촛불 킬까요?"
"아니, 됐어. ……너 키고 싶으면 켜."
"파벨 경이 됐다면 안 킬래요."
"그래, 착하다."
열게요? 하고 리온이 기세 좋게 케이크 뚜껑을 잡았다. 파벨은 한 쪽 손으로 턱을 괴고 케이크가 나오기를 기대했다.
"맛있어 보이던데-"
"오, 그래?"
하지만 불쌍하게도, 파벨의 기대는 정확히 5초 만에 무너졌다.
"……아, 나, 이 형수님이."
"에……?"
"초콜릿 있어…… 꼭 부슈 드 노엘처럼 생긴 놈이…… 크리스마스는 한참 전에 지났는데 무슨 부슈 드 노엘이야, 형수님은……"
"이거, 초콜릿 없잖아요, 위에……?"
"그 사이에 있잖아…… 망했다."
리온은 고개를 기울여 롤케이크의 사이를 보았다. 그러고보니 좀 진한 부분이 있는데, 초콜릿이었구나. 그런 태평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파벨은 머리를 감싸쥐고 초콜릿 냄새가 싫어서 끙끙대기 시작했다. 속이 울렁거려, 버터 냄새 나잖아. 젠장. 그런 얘기를 넋두리처럼 늘어놓던 파벨은 뭔가 생각난 듯 고개를 퍼뜩 들었다.
"야, 리오."
"네?"
"옆에 앉아봐."
무슨 일인가, 하고 옆에 앉으면 파벨이 의미심장하게 한 마디 뱉었다.
"너 케이크 먹기 전에 키스 한 번은 해야겠다. 생일 축하해."
앞이랑 뒤의 말이 좀 안 맞는데요…… 리온은 그렇게 말을 하려다 입술이 가로막히는 것에 그저 말을 삼켰다. 부드럽게 감겨오는 혀는, 파벨이 케이크를 먹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달았다. 잠깐 케이크는 잊어도 되겠지. 리온은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