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리스의 'Adieu' 와 시간축 비슷.
사람들이, 그리고 샤텐의 핵심간부들이 그러기를, 얼마 뒤에 공개 처형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파벨 헤이트레드는 형수에게 그 이야기를 전했다.
반란이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쁨에 젖지 아니한 채 집으로 묵묵히 돌아와서 파벨 헤이트레드는 소파에 앉아서 키슈를 씹고 있었다. 뒤에서 이사 준비를 하는 제 형수인 블리스 어윈은 침묵하고 있었다. 이사 준비로 바쁜 것이라 생각하며 파벨은 그저 그러려니 했다.
이제와 반란이 성공했다고 해도, 세니스는 전혀 달라진 바가 없어보였다. 엔디미온 카스토르가 죽는다고 해도 전혀 달라질 리 없을 터였다. 파벨은 손에 들린 키슈의 남은 한 조각을 공격적으로 먹고 삼킨 뒤 제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요란한 형수를 향해 말했다.
"형수님, 정말 갈 거야?"
그러면서 파벨은 우울한 얼굴을 하고 지하실 쪽을 바라보았다. 지하실이라고는 해도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이것저것 갖춰져 있기는 했다. 한 사람이 눕기에 버겁지 않을 침대 따위가 그런 것이었다. 많지는 않았지만 단기간 숨어있을 순 있었다. 그 지하실 안에 파벨은 리온 에비히를 숨겨두었다. 오늘은 안에 있는 그가 조용하다. 지하실은 안과 바깥 모두에서 잠글 수 있어서, 안에서 혹시 연다고 하더라도 바깥에서 열어주지 않는 이상 나올 수 없을 것이다. 지하실이니만큼 춥지는 않을까 같은 걱정은 하지 않았다. 형수가 얼마 전에 담요를 넣어주었었다.
아직 바깥으로 빼내주고 싶진 않았다. 확실한 대답을 듣기 전까지는 못 내보내준다. 파벨은 초조한 듯 괜히 주먹을 쥐었다 폈다. 그 때 아까 던진 질문에 대해 형수가 대답했다.
"공개처형 말예요?"
"아니, 이사."
공개처형은 일종의 축제 같은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반란이 성공한 자들에게는 분명 샴페인을 터뜨릴 축제가 될 터였고, 자극적인 무언가가 필요한 일반 군중들에게는 섬뜩하면서도 희귀한 볼 거리로서의 축제로 발화할 것이었다.
그 축제가 끝나면 자신은 자유가 될 터였다. 거창하게 내가 혁명을 성공시킨 샤텐이었노라 말하진 않을 테니까. 완벽한 자유다.
"갈 거예요."
"아, 씨. 진짜 가지 말라니까."
조금 성질을 부리며 새 키슈를 집어들면 형수의 잔잔한 목소리가 돌아왔다.
"제 권한이 아니라고 누누이 말씀드렸잖아요. 이제 떼는 그만 쓰세요."
"……레시피 따위 봐도, 요리 못 한다고!"
파벨이 투덜거리며 접시 위에 있던 키슈를 씹었다. 레시피가 어쩌고, 요리가 어쩌고라고 하긴 했지만 결론적으론 가지 말라는 말을 돌려말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블리스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웃다가 문득 생각난 듯 되물었다.
"누가 사형수예요?"
파벨은 아무 생각 없이 대답했다.
"단장님."
갑자기 더 이상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파벨은 이상한 기운을 느끼고 형수를 돌아보았다. 블리스는 동상처럼 굳어 있었다. 왜 저러는 걸까, 하고 잠깐 생각해봤지만 짚이는 곳이 없어서 파벨이 그냥 키슈만 씹기로 했을 때, 한참 미동도 없던 그의 형수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가야겠네요."
"어딜? 공개처형? 형수한테는 사람 죽는 거 구경하는 취미 없잖아."
"……카스토르 단장님이 가시는 마지막 길은 봐야죠."
그리고 순간 파벨은 블리스에게 단장의 이름을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다는 걸 깨닫고 머리가 싸늘하게 식었다.
"아는 사이야?"
"……."
블리스는 그저 웃었다. 파벨은 그가 절대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표정을 이상하게 일그러뜨렸다. 그 공개처형의 당일이 지나더라도 블리스는 그에게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을 것이었다. 저렇게 대답하지 않는 걸 보면 그럴 것이었다.
알아서 무엇하랴.
파벨은 단장이 죽는 게 조금 씁쓸하긴 했지만 그에겐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 * *
공개처형 당일 날, 형수는 답지 않게 멍때리기 일쑤였다. 일 때문에 아직 집에 들어오지도 않은 형 대신 파벨은 형수를 챙겼다. 형수는 처음엔 집 키를 빠뜨렸고, 그 다음엔 스카프를 빠뜨렸다. 게다가 마지막에는 처음에 입고 있던 롱코트마저 빠뜨리는 기염을 토해서, 그 마지막에 파벨은 굉장하게 성질을 냈다. 정신 좀 차리라고.
어쨌든 그렇게 형수를 보낸 뒤, 파벨은 조용해진 집안을 둘러보다가 지하실 쪽으로 걸어갔다. 조심스럽게 철컥, 하고 문을 열면 안에서 반응하는 소리가 났다. 깨있었나 보네. 파벨은 문을 잠그고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지하실엔 작은 벽등이 켜져 있어서 어둡진 않다. 아니, 책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밝다.
"리오."
지하실 바닥에 내려가서야, 주홍색 불빛 사이로 흔들리는, 좋아하는 얼굴을 볼 수 있다. 파벨은 착잡한 얼굴로 손을 뻗어 리온을 끌어안았다. 품 속에서 그가 빠져나오려고 아둥바둥하는 것이 느껴진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화가 난다. 파벨은 리온의 두 팔을 잡고 꽉 눌렀다. 그러자 진홍색 눈동자가 커지며 파벨을 향했다. 더 이상 바둥거리지 않는 리온을 보다가 파벨은 낮게 말했다.
"……저번에 말한 건 좀 생각해 봤어?"
"……."
노을의 분홍을 겹겹이 쌓아놓은 듯한 그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그럼에도 대답이 없다. 쉬이 나오지 않는 그 대답에 조바심이 나, 파벨은 저도 모르게 그를 와락 끌어안고 말았다.
"제발……."
리온의 온 몸이 부서져라 끌어안은 파벨이 갈라진 목소리로 속삭였다.
"같이 살자. 리오. 응? 원하면 여길 벗어나서 다른 곳에 가서 살아도 좋아."
네가 싫다고 한다면 다리를 부러뜨려서 도망 못 치게 만들 거야. 어디에도 못 가게, 내 옆에 있게. 이것만은 절대 양보할 수 없어.
"부탁이야. 세니스를 배신한 날 원망해도 좋으니까."
파벨은 품에서 잠깐 리온을 떼어놓았다. 리온의 볼에 두 손을 가져다 대고 감싸쥐면, 따스했다.
"납치한 거, 잘못 했어. 배신한 것도 용서를 빌 테니까. 젠장……."
그의 침묵이 억장을 무너뜨린다.
"리오, 날 아직 좋아한다고 말해줘."
파벨은 결국 표정을 무너뜨렸다.
"이 내가, 단지 너밖에는 원하는 게 아무것도 없단 말이야."
무너진 표정 아래에서 눈물이 흐를 것 같아서, 파벨은 다시 리온을 끌어안았다. 한참 낮은 그의 하늘색 머리카락에 얼굴을 묻으면, 몸이 떨렸다.
사랑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