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것을 먹기 좋아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크고도 사소한 고민거리 중 하나는 바로 '오늘 점심에 뭘 먹을까?' 이다. 하루에 3끼 밖에 먹지 못하는데 기왕이면 좀 더 맛있는 것을 먹어야 하지 않겠느냐, 라는 의견이 그들을 지지한다.
에스티엔느도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그들 중 하나였다. 그녀의 의견은 '하루에 3끼 밖에 먹지 못한다면 다른 건 간식으로 조금씩 먹으면 되는거야.'이다.
물론, 오리지널 지지자들인 그들이나, 리메이크 지지자인 그녀에게 있어서도 간식은 삼시세끼에서 제외였다.
Prenzo col amico
To. 리셋님
"엄마, 그래서 뭘 먹을까?"
에스티는 점심을 먹으러 나가기로 했다. 살갗을 간질이는 햇빛을 받으면서 밥을 먹는 것은 그녀를 즐겁게 하는 것 중 하나였다.
얼핏 혼잣말처럼 들릴 수도 있는 중얼거림은, 그녀가 늘 그렇듯 인형에게 건네는 말이었다. 손에 꼭 들고 있는 엄마 인형을 내려다보며 에스티는 눈을 깜빡였다. 대답이 없으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좀 기대했었는데. 그래도 그녀는 시무룩한 표정을 짓지 않았다. 다만 더 덧붙였을 뿐이다.
"그치만 너무 많이 먹으면 곤란해. 엄마 딸은 조금 있다가 티푸드 먹을 거거든. 지금이 두 시니까 한, 다섯 시 쯤? 오늘은 스콘이 먹고 싶은데. 메이 언니한테 만들어 달라고 할까봐."
엄마 인형의 양손을 조심스럽게 잡고 옆으로 살짝 흔들던 에스티는 문득 자신의 위로 그림자가 드리우는 것을 알아채고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탁한 녹색 눈동자와 마주했다. 에스티가 아는 색이었다. 우 환 오빠. 에스티는 속으로 그의 이름을 떠올렸다. 에스티는 기억력이 좋았다. 그 정보는 확실했다.
늘 그의 눈동자를 보고 있으면 이끼라도 낀 걸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조금 이상한 비유이기는 하지만 그랬다. 닦으면 깨끗한 녹색 유리구슬이 될 것 같은데, 그의 것은 늘 탁했던 것이다.
"안녕하세요, 환 오빠."
"……안녕하십니까."
어쩐지 인사는 조금 뒤에 나왔다. 에스티는 남자, 우 환의 시선이 그녀의 인형에 가 있다는 것을 알고 인형을 그와 마주하게 했다. 그리고 인형의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러면 아주 진지한 얼굴로, 환이 고개를 숙여 다시 인사했다.
"어머님도 안녕하십니까."
매사에 진지한 환 오빠라면 누구에게 먼저 인사해야 하는지 고민했을지도 몰라.
에스티는 작게, 킥킥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안녕하세요. 여기서 뭐하세요?"
"식사 때를 놓쳐서 식사를 하러 갈까 생각하면서 걷고 있었습니다."
점심시간이 아마 한 시 쯤이었지. 에스티는 엄마인형의 스커트를 정리하며 환을 향해 제안했다.
"저랑 같이 가실래요? 저, 밥 먹으러 가던 중이었어요."
아직 메뉴는 못 정했지만요. 아직까지 결정을 내리지 못한 것이 조금 부끄럽게 느껴졌는지 에스티는 볼을 살짝 붉히며 뒷머리를 긁었다.
환은 안경 너머로 에스티를 바라보다가 메뉴에 대해 의견을 내놓았다.
"……파스타는 어떻습니까."
그리고 의견을 내놓자마자 환은, 에스티의 하늘을 닮은 눈동자가 한껏 반짝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환 오빠는 천재인 것 같아요!"
"과찬이십니다."
무뚝뚝한 얼굴에서 나오는 말은 지극히 평범한 겸손의 표현이라, 에스티는 재미있다는 듯 소리 높여 웃었다. 환은 에스티와의 동행을 결정했는지 한참 웃으며 걷고 있는 그녀의 등 뒤를 조용히 따랐다.
에스티는 엄마인형을 하늘 높이 들어올리며 '엄마, 환 오빠가 파스타가 좋을 것 같대.' 따위의 소리를 계속 늘어놓았고, 환은 그 모습을 한참이나 관찰했다.
그나마 따뜻하던 배 안에서 바깥으로 나가자 날씨가 춥다는 것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에스티가 걸치고 있던 케이프의 아래로 싸늘한 바람이 들어왔다. 조그만 소녀는 엄마인형을 꼭 끌어안으며 몸을 움츠렸고, 환도 무의식적으로 제 팔을 감싸 몇 번 쓸고 다시 목각 같은 자세를 유지했다.
"열린 곳이 있을까요?"
"예?"
"파스타 가게 말이예요."
시간이 멈춘 차가운 거리에선 상업이 융성하게 돌아갈 리가 만무하다는 것을 아는 에스티가 걱정스럽게 중얼거렸다. 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에스티는 손을 들어 엄마 인형의 손으로 제 볼을 문질렀다. 빨갛게 된 볼을 조금이라도 녹여보려는 셈이었다.
"오늘 날씨 생각보다 많이 춥지 않아요?"
탁한 녹색 눈동자가 소녀의 발간 볼에 멎었다. 약간의 침묵 후에서야 환은 입을 열었다.
"춥습니다."
"그쵸, 으, 빨리 열린 가게를 찾아야 할 텐데!"
배는 고프고, 파스타 가게는 보이지도 않고. 점점 마음이 급해지는 중에, 가게를 찾아 고개를 두리번거리는 에스티의 등 뒤로 환의 묵직한 목소리가 떨어졌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
찾았어요? 라고 말하려던 에스티는 그녀의 시도를 철회했다. 환이 향하는 곳은 파스타 가게가 아니라, 옷가게였다. 환은 영업을 하고 있지는 않았으나 문이 열린 가게 안으로 들어가 뭔가 하나를 집은 뒤 돈을 계산대 위에 아무렇게나 던져놓고 나왔다. 에스티는 영문을 몰라 환을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있었다.
"환 오빠, 갑자기 옷가게는 왜요?"
환은 대답 대신, 조용히 팔을 펼쳐 옷가게에서 집어왔던 뭔가를 에스티에게 덮어주었다. 정확히는 돌돌 말아주었다가 옳았다. 에스티는 갑자기 목과 아래쪽 볼에 다가오는 약간의 온기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목도리?"
환은 고개를 짧게 끄덕이고, 에스티에게 이해를 시키려는 듯 설명조로 천천히 말했다.
"감기 걸리십니다."
그 말을 들은 에스티의 얼굴이, 크리스마스 트리의 불빛 같이 환해졌다. 그녀의 조그만 입술에서 탄성이 터져나온 것은 그 다음이었다.
"와, 맞아, 맞아요. 아빠가 늘 여자아이는 따뜻하게 하고 다녀야 한댔어요. 고맙습니다!"
그리고 에스티는 한참이나 목도리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았다. 환 오빠는 어떻게 제가 좋아하는 색으로 목도리를 집어왔냐는 둥, 제가 파란색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아셨냐는 둥, 이거 정말 길고 따뜻하다는 둥…….
목도리에 대한 찬사를 대충 끝마친 다음, 에스티는 들고 있던 엄마 인형을 억지로 자신의 목도리 옆에 끼워넣었다. 환은 그 기묘한 모습을 한참 보면서 이해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환이 내린 결론은, 엄마 인형도 여자니까 따뜻해야한다는 것이었고 그것은 에스티의 생각과 꼭 들어맞았지만, 아마 환은 그 사실을 끝까지 몰랐을 것이다.
단지 환이 아는 사실은, 에스티와 자신이 그로부터 약 15분 뒤에서야 파스타 가게를 찾아서 파스타를 배불리 먹고 나왔다는 것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