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생각만큼 그렇게 밝고 행복하지는 않다.
그런 것쯤은, 이미 알고 있다.
누군가는 웃는 와중에 누군가는 반드시 운다. 그것이 세상의 섭리다.
나는 13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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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엄마!"
"안녕, 에스티."
느긋한 일요일 아침이다. 나는 요새 학교에 다니고 있다. 학교라기보다는 비슷한 또래의 몇 명을 모아서 책이 많은 이웃집에서 교육하는 것이긴 하지만. 편의상 학교라고 부르는 그곳에서 내준 숙제가 있어서 나는 파이를 만들고 있는 엄마에게 다가가 종이를 살짝 내밀었다.
"이게 뭔가요?"
"숙제."
엄마는 밀가루가 묻은 하얀 손으로 종이를 조심스럽게 받아들었다. 내가 종이를 구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녀는 아는 것이다.
"어떤 숙제……?"
"정보 알아가기?"
"뭘 써야하지……?"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에 대한 거? 나도 포함. 형제자매는 없으니까 생략."
나는 엄마가 평소처럼 '음, 그럼 무슨 이야기를 하지.' 하고 고개를 갸웃거릴 것을 예상했으나, 그 예상은 멋지게 빗나가고 말았다. 엄마는 금세 침울한 얼굴을 하고 손에 묻은 밀가루를 털었다. 동그랗게 만들어놓은 반죽은 더 이상 엄마의 손길이 닿지 않았다. 나는 엄마의 의외의 모습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으음, 에스티?"
"응, 엄마."
"……사실은 우린 할머니, 할아버지가 없어요."
왜냐고 물으려던 찰나에, 머리에 수건을 얹고 평상복을 입은 아빠가 나타났다. 나는 성질 급하게 아빠를 향해 냅다 인사하지 않았다. 아빠는 늘 엄마에게 먼저 인사하고는 했던 것이다. 오늘도 아빠는 머리에 얹은 수건을 내리지도 않은 채 엄마의 볼에 키스하며 인사했다.
"안녕(Guten Morgen), 마인 리베."
"안녕(Bonjour), 내 사랑."
매일 보면 질리고 오글거릴 것 같다고 내 친구들은 그러는데,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 두 사람은 아직 어린 내가 봐도 굉장히 예쁘다.
"안녕(Guten Morgen), 클라인 리베."
"안녕(Guten Morgen), 아빠!"
한 차례의 인사 폭풍이 지나가고 난 뒤에 아빠는 소파에 푹석 앉았다. 그것도 엄마와 나 사이에.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 아빠는 정말 다 좋고 멋지지만 조금 눈치없는 것 같다.
"그런데 늬 엄마 얼굴 왜 그래."
"내가 대화 주제 잘못 잡았나봐."
"무슨 주젠데?"
"할머니, 할아버지."
차라리 말을 하지 말 걸 그랬다. 나는 아빠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진 것을 보고 후회했다. 아빠의 입술이 굳게 닫혀 열릴 기미가 안 보였다. 일요일 아침인데 내가 이렇게 만들어버렸다며 자책하고 있을 때 아빠가 한 마디 내뱉었다.
"그런 거 없어."
"……."
왜 없냐고 묻고는 싶었는데, 집안 분위기가 너무 우울하고 험악해서 도저히 말을 못 붙이겠다. 나는 아빠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는데, 아빠가 갑자기 씩 웃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들어올렸다. 영문을 몰라 어버버하고 있는데 아빠가 나를 어깨에 앉히고 말을 시작했다.
"아니지, 우리 딸도 이제 열세 살인데. 알 건 알아야지."
"볼피."
아직 소파에 앉아있던 엄마가 아빠를 불렀다. 볼피는 엄마가 아빠를 부르는 애칭이다. 나는 평소보다 조그매진 엄마를 보고 있다가 아빠를 내려다보았다.
"얘기해 줄거야?"
"물론. 근데 그 이야기 갑자기 왜 나왔냐?"
"숙제."
"거따가 쓰지 마. 알았지?"
"응."
엄마가 다시 한 번 아빠를 불렀다.
"볼피, 아직 얘기하는 건 좀……."
"어허, 하늘 같은 지아비 말씀인데. 괜찮다니까. 마인 리베, 이 오빠만 믿어."
나이가 몇인데 오빠……. 나는 속으로 깔깔 웃으며 아빠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아빠는 내 얼굴을 올려다보더니 흥얼거리듯 말을 시작했다.
"아, 이거 좀 복잡한데. 내 얘길 할 수도 없고."
"어떤 얘기?"
"아~ 그러니까. 어. 좋아. 잘 들어. 엄청 잘 살던 어떤 집이, 라이벌이었던 역시 엄청 잘 살던 네 엄마네 집을 망하게 하려고 아빠를 고용해서 엄마네 집으로 보냈어. 그래서 아빠는 그 집에서 잠입근무 같은 걸 했는데 엄마랑 사랑에 빠져서 이도저도 못하다가 들켜서 늬 외할아버지한테 죽을 뻔했는데, 또 어떻게 엄마가 아빠를 가까스로 구해줬지만 그게 또 들킨거야! 그래서 네 외갓집이 엄마를 거의 내쫓다시피해서 둘이 손잡고~ 클라인리베랑~ 미들파트로 사랑의 도피를 왔다는 이야기."
……뭔가 굉장히 스펙타클한 이야기인 것 같은데, 잠깐, 나?
"나도 있었어? 기억 안 나는데?"
"물론 넌 모르지. 넌 뱃속에 있었거든."
듣는 나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오히려 엄마가 굉장히 민망해했다.
"그, 그걸 말하면 어떡해."
"사실이잖아."
엄마는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고 부엌으로 들어가버렸다. 그리고 곧 도마 위에 내버려두었던 반죽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나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다가 아빠를 내려다보았다.
"그래서 없어?"
"둘 다 없어. 아빠의 부모님은 아빠가 어릴 적에 돌아가셨거든."
"으으음. 그치만, 아빠."
엄마와 아빠는 처음부터 끝까지 행복할 줄만 알았다. 좋은 부모님을 만나서 좋은 가정에서 자란 뒤 좋은 가정을 꾸릴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나는 꽤 충격을 받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충격보다는 뭐랄까, 어쩐지 슬퍼졌던 탓이다.
"그럼 외할아버지랑 외할머니는?"
"잘 살고 있겠지."
"안 만나봤어?"
"가봤자 왜 왔냐면서 다시 또 쫓겨날 텐데."
"걱정할텐데."
그 말을 듣자 아빠는, 굉장히 슬픈 얼굴을 했다.
"……이거 클라인리베에게만 말하는 거야."
아빠는 쪽, 하고 입술로 뽀뽀 소리를 냈다. 나는 아빠의 갈색 눈동자를 한참이나 보고 있었다.
"그런 거, 알아. 하지만 못 가."
"왜?"
"어른들의 사정이란 게 있거든."
"엄마 아빠의?"
"아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의."
하지만, 울지도 모르는데.
엄마를 생각하면서, 가끔이나마 외할아버지랑, 외할머니는 울지도 모르는데.
그렇지만 나는 끝끝내 말하지 않았다. 아빠는 멋쩍은 얼굴을 하고 나를 내려놓았다. 나는 아빠를 올려다보았다. 아빠가 오늘따라 유난히 커보였다. 아빠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부엌으로 가서 엄마를 꼭 끌어안았다.
나는 부모님의 뒷모습을 보다가 숙제 종이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아무래도, 할아버지와 할머니 칸에 쓸 말은 없다.
나는 이렇게 엄마와 아빠와 함께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데, 나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금도 엄마와 아빠를 그리워하면서 울고 계실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그 분들을 찾아가 볼 수도 없다.
세상이 전부 행복할 줄만 알았던 내 상상은 그 날로 막을 내렸다.
나는 그 사실이 크게 슬프지는 않았지만, 어쩐지 조금 안쓰러워졌다.
하지만, 여전히 내 세계는 행복하다.
사랑하는 엄마가 있고, 사랑하는 아빠가 있다.
그것이면 됐다.
"엄마, 나 타틴 타르트가 먹고 싶어!"
나는 엄마의 등 뒤로 뛰어들어 그녀의 허리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래, 이것이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