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로 돌아가기
4화: Le Revenant? Non!



에스티, 우리 사랑하는 딸.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해줄까요?

으응, 오늘은, 오늘은~ 엄마가 싫어하는 이야기를 해줘.
으응? 왜?
엄마가 좋아하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으니까, 엄마가 싫어하는 걸 알고 싶어.
우, 그러면, 유, 유, 유령 이야기… 는…… 어, 어떨까?
꺄하하하, 엄마 떤다! 해주세요!
에스티에나 테오도라 리히터! 또 엄마 놀리냐?
아빠 또 내 이름 이상하게 발음한다! 엔느야, 엔느!
미안, 미안. 그 발음 나한텐 너무 어려워. 아무튼 엄마 좀 그만 놀려라.
그치만 아빠, 유령이야기만 하면 떠는 엄마가 너무 귀여운걸!
아, 그건 레알이지.
…….
…….
아, 대체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건데.




-





으레 그 나이 대 소녀들이 그렇듯이, 에스티엔느는 괴담에 열광했다.
정확히 말해서 좋아한다기보다는 괴담을 들을 때 느껴지는 그 으스스한 기분이라던가 싸한 느낌이 마냥 신기했던 것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사랑하는 딸이 조르더라도 무서운 이야기를 잘 말해주지 못 했다. 당신께서 무서운 이야기 자체를 무섭게 여겼던 탓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무서운 이야기에 의외로 담담한 어린 딸이 기특했는지 자주 해주곤 했다. 그러고 난 뒤에 꼭 어깨를 털어주었지만.

에스티엔느는 사람들이 조각상처럼 굳어, 대재앙이 지나간 것만 같은 삭막한 거리를 걷고 있었다. 아무도 움직이는 사람들이 없었다. 침묵과 고요만이 맴도는 그 길 위에서 에스티는 저도 모르게 발걸음을 늦추고, 소리를 죽였다.

- 사람들이 죽을 때가 되면 나타나는 것이 있지.

문득 모퉁이를 돌았을 때 뒤를 돌아보자, 아버지가 침대 맡에서 옆에 어머니를 꼭 앉히고 해주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사람이 죽었을 때 그 영혼을 회수해가는 역할을 하는 사신이라면서,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고, 굉장히 많다고 했다.
당시 에스티는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으나, 아마 그녀가 그 때 그 이야기를 무서워 하지 않은 것은, 옆에서 엄마가 자꾸 무섭다고 울먹여서 아버지가 중간중간 달랬기 때문이 아닐까.

싸하게, 바람이 불었을 때 에스티는 오소소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얼마 전에 읽었던 책에서는 이렇게 혼자 있을 때 갑자기 살인마가 나타나서……

"으."

에스티는 일부러 고개를 크게 흔들고 모자를 꾹 눌러썼다. 나름대로 용기를 얻기 위한 행동이었다. 아직 항구까지 가려면 멀었다. 파도소리는 멀었고,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목소리도 없었다.

탁.
어쩐지, 등 뒤에서 발소리가 난 것 같은데.

에스티는 침을 꿀꺽 삼키고 뒤돌아보지 않은 채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발걸음이 빨라지려는 것은 아마 그 나이 대 소녀들이 괴담을 들은 한참 뒤에야 가질 법한 조그만 공포 때문이 아닐까. 그렇지만 에스티는 끝끝내 발걸음을 빨리 하지 않았다.

- 애초에 너를 노리고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면, 도라. 네가 그 존재를 느꼈다는 걸 그들에게 들키면 안 돼. 안 그러면 그들이 너를 따라오기 시작하거든.

아버지가 답지 않게 우울한 얼굴을 하고 했던 말을 떠올렸다.
하지만 에스티는 이 발소리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것이면 어떡하지, 하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만약 그녀의 가설이 맞다면 미친듯이 항구를 향해 뛰어야 하는 게 아닌가.

잠깐, 이게 혹시 새우잡이 배에 날 태워가려는…… 그런……

생각이 폭주하기 시작하는 머리를 어떻게든 자제하려 애쓰던 에스티의 귓가에 꽤 선명한 소리가 내려앉았다.
탁.
아까와 같은 발소리라는 것을 깨닫자마자 에스티가 뒤를 홱 돌아보았다.

"……어라."

하지만 그녀의 등 뒤는 텅 비어있었다. 애초부터 사람이 없었다는 것 같이, 발자국조차, 사라지는 옷자락조차.
에스티는 다시 침을 꿀꺽 삼키고, 로보트 같이 앞으로 돌아 걷기 시작했다. 에이, 괜찮겠지. 내 착각일 거야. 나를 데려갈 거였음 벌써 데려갔겠지, 그렇겠지.

탁. 또각, 또각.

하지만 그녀가 안심하는 것을 하늘은 바라지 않았던 모양이다.
다시 이어지는 발소리는 분명히 그녀를 따라오고 있었다. 에스티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최대한 모르는 척, 최대한 뻔뻔한 척, 최대한 괜찮은 척!

좋아. 에스티는 계획을 세웠다. 계속 따라오는 뭔가를 따돌릴 생각이었다. 가방 안에 소금 갖고 온 것 같은데. 에스티는 모르는 척, 가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소금은 없었고, 은도금이 된 바늘이 있긴 했다. 아, 이걸로 되긴 할까. 에스티는 잠깐 낙심했지만 없는 것보다야 낫겠다며 마음을 고쳐먹었다.

계획 1. 뒤를 돌아보고 뭔가가 있으면 바늘을 휘두른다. 계획 2. 없으면 그대로 앞으로 돌아 항구까지 돌진한다.
어떻게 보면 좀 무모했지만, 이미 공포가 마음 속에서 커질 대로 커진 에스티로서는 그것밖에 세울 수 있는 방도가 없었다.

에스티는 마음을 크게 먹고 불시에 뒤를 홱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 자리에는 황량한 바람만이 바닥을 헤치고 날아갈 뿐이었다.

"헉, 없어."

계획 2 발동. 에스티가 속으로 그렇게 외친 다음 앞으로 다시 몸을 돌렸을 때였다.

"헤이."

안개가 낀 바다를 닮은 파란 눈이 호선을 그리며 인사를 건넸다.
그 눈이 그 다음에 올 상대의 반응을 어떻게 생각했는진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에스티의 반응은 짧고도 확실한 반응이었다.

"꺄으아아아아악!"

잠깐 당황하는가 싶더니, 파란 눈의 청년인 청휘는 에스티의 반응에 충실해지기로 한 모양이었다. 그는 같이 소리를 질러주었다.

"으아아아아악!"

그건 꽤 효과가 있었는데, 그 뒤에도 약 3초 가량 청휘를 보며 비명을 지르던 에스티의 입에서 소리가 끊긴 것이다.
청휘는 이때다 싶어 싱글싱글, 방금 전에 비명을 실컷 지른 소녀를 향해 웃었다.

"자자, 진정하라구요. 애기야. 난 나쁜 사람 아니거든요?"
"아……. 아? 아아?"
"너, 배에 타는 애지?"
"어? 어어, 네?"
"실버니아 호 말이야. 배에 타지? 배에서 인형 두 개 갖고 노는 걸 본 것 같아."
"아, 으응, 네, 맞아요."

같은 배에 타는 동료인 모양이라고 판단한 에스티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평소의 얼굴로 고개를 착실히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던 청휘는 그녀가 자신을 한참 올려다보는 것에 동정심이라도 느낀 것인지 무릎을 살짝 굽혀주었다.

"난 청휘야. 너는?"
"안녕하세요, 청휘 오빠. 에스티엔느 테오도라 리히터라고 해요. 에스티라고 해줘도 되고, 도라라고 해줘도 된답니다!"
"이름이 뭐가 그렇게 길어."

그러면서 깔깔 웃는 청휘의 얼굴을 한참 보던 에스티가 입을 열어 재잘거렸다.

"아, 근데 저 엄청 놀랐다구요! 오빠가 유령인 줄 알았어요."
"너 아직 모르겠냐? 내가 바로 그걸 노린거야."
"허엉……?"
"됐다, 됐다. 배 가는 길이야?"
"응, 배에 가는 중이예요."

배 이야기를 하면서 청휘가 걷기 시작했다. 에스티는 청휘를 뒤따르며 손에 들고 있던 조그만한 바늘을 다시 반짇고리 안에 집어넣기 위해 가방을 열었다. 받짇고리 안에 어렵지 않게 바늘을 집어넣은 뒤 가방을 닫으려는데, 청휘가 가방 안으로 손을 쑥 넣어 뭔가를 꺼냈다. 에스티는 입을 쩍 벌리고 그가 꺼낸 것을 보았다.
엄마 인형이었다.

"이거, 네 인형이야?"
"응, 내 인형이예요."
"아니, 너 본따서 만든 인형이냐구."

으으응. 에스티의 입에서 긴 부정음이 나오며 고개가 설레설레 저어졌다. 청휘는 그럼? 하고 되물었다.

"엄마 인형. 이쁘죠."
"너랑 닮았는데?"
"난 엄마 닮았거든요!"
"오호. 그럼 다른 건 아빠 인형이겠네."
"어떻게 알았어요?"
"이 오빠가 눈썰미 하난 짱이거든."
"그런 것 같아요."
"아버지 인형도 줘봐."
"응? 여기요."

에스티에게서 아버지 인형을 받아든 청휘는 양 손에 인형 하나씩을 쥐고 싱글벙글 웃으며 에스티에게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아빠 인형으로 모자를 툭툭 치거나 볼이나 목을 간질이는 따위의 가벼운 장난들이었다. 에스티는 청휘의 다리 주변을 빙빙 돌며 간지럼을 피하려 애썼다.

"아하, 아하하."
"아빠의 간지럼 태우기 공격을 받아라, 에스티엔느!"
"우리 아빤 안 그래요, 아하, 와하, 간지러!"
"그럼 뭐라고 하시는데?"
"우리 도라한테 간지럼 같은 걸 끼얹나?"
"왜 도라야?"
"아빠는 에스티엔느 발음을 못해요. 맨날 에스티에나라고 해서 나한테 핀잔 듣는걸. 그리고 그 이름보다는 테오도라라고 하니까."
"이름이 긴 건 엄마용 아빠용 이름이군, 과연."
"그게 뭐예요, 헤헤."

두 사람은 한참 그렇게 장난을 치며 함께 배 쪽으로 걸었다. 찝찌름한 바다 냄새가 가까워졌고, 방파제를 때리는 파도가 시끄러워졌다.

"휘 오빠, 나 말 놔도 돼? 오빠 넘 재밌어."
"편할 대로 해. 그럼 난 뭐라 부를까. 에스티?"
"편할 대로 해."
"그게 뭐냐."

두 사람은 소리 높여 웃었지만 그 소리들은 높이 우는 갈매기 소리에 묻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