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다른 곳보다 일찍 내리는 그 도시엔 초현실적인 존재들이 퍽 자주 공기를 뒤흔들곤 했다. 말끔하고 단정한 옷차림의 남자 혹은 여자가 쥐도 새도 모르게 나타나 영혼을 가는 탓이었다. 그들은 볼 수 있는 인간은 많이 없었으나 적어도 십 년에 한 번씩은 보는 자들이 몇 명씩 나왔다.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자들은 으레 하얗거나, 검은 날개를 등 뒤에 단 채 이질적인 모습을 하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목격담을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를 통해 구구절절 늘어놓곤 했다. 천사나 악마를 보았다면서.
그런 이야기들을, 당사자들은 별로 내켜하지 않음이 분명했다. 살아있을 시절에 지젤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던 작은 소녀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사실 지젤로서는 그렇게 떠들어대는 사람들에게 별 감흥이 없었지만 까만 날개를 가진 제 동료는 그렇게 여기지 않는 듯했다. 비즈니스에 차질이 생기잖아. 예쁘장한 얼굴을 찌푸린 채 동료는 생전에는 피우지도 않았던 블랙체리스톤을 입에 물고 빨아당겼다. 딱히, 그런 것 같진... 않아. 지젤은 담배연기가 싫다고 생각했지만 콜록거리지도 않고 다만 가만히, 희뿌연 연기 속 어딘가에 남은 체리향을 들이쉬었을 뿐이었다. 불이 담배의 절반을 살라먹은 때에 동료는 말했다. 네 비즈니스는 잘 되고 있나봐, petite. 지젤은 그것이 사실이었으므로, 동료가 자신을 비꼬려는 의도로 말했음을 알았지만 그저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었다.
인간들이 천사와 악마로 흑백논리를 펼치는 통에 알지 못했던 사실은, 날개 색이 까맣고 하얀 것은 그저 선택의 문제였다는 것이다. 어떤 일을 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 육신이 죽은 뒤 영혼을 순리에 맞게 데려가는 자들은 하얀색 날개를, 순리를 거스를 수 있는 기회가 있는 인간들과 거래하는 자들은 까만색 날개를 지녔을 뿐이었다. 지젤은 전파를 타는 모든 이야기들이 그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는 걸 알고 있었다. 굳이 정정해줄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그녀는 그녀가 인도할 사람들에게만 진실을 알려주는 것으로 족했으므로.
지젤이 조만간 인도해야 하는 남자는 늙은 남자였다. 나이가 그렇게 많지는 않은 사람으로, 지젤은 아주 오랫동안 그를 지켜봐왔다. 그는 순리를 거스를 수 없는 이였고, 맨 처음에 그걸 알았을 때 지젤은 어린 아이가 순리를 거스를 수 없었을 때만큼 안타까웠다. 소녀는 그가 더 즐거운 삶을 보낸 뒤에야 순리를 따랐으면 했기 때문이었다. 휴 맥거원이라는 이름의 남자는 (같이 그를 관찰한 동료의 평가에 의하면) '약간 재미없는' 삶을 살고 있었으므로.
어쨌거나 지젤의 눈에 처음 그가 눈에 들어왔던 건, 늙은 개를 집에 들일 때부터였다. 그는 자신이 지켜보고 있었단 것을 모를 것이었다. 지젤이 생각하기에 남자는 참으로 굳건하게 저를 지탱하고 있었지만 기실 외로운 인간처럼 보였다.
남자는 매우 규칙적인 생활을 했는데, 늙은 개와 함께 살고 있었을 때엔 그나마 나았지만 늙은 개를 먼저 보낸 뒤에는 개와 보냈던 시간을 제외하고 또 métro-boulot-dodo*로 살아갔던 탓이었다. 그에게 어떤 운명적인 해프닝이 일어나는 일은 아주 적었다.
자기 전에 위스키를 마시고, 일어나서 출근을 하고, 수업을 하고, 집에 와서는 에세이를 채점하거나 잔업을 처리하고, 책을 읽거나 신문을 보거나 디스커버리 채널을 보고, 이웃집 남자에게 간간히 시달리고, 벽난로 위에 올라간 액자를 닦고(지젤은 이 때야 비로소 그가 해군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일부를 제외하고 모두가 행복해지는 명절이나 새해가 되면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결국 발신인에게로 돌려보내고야 말 티켓을 받고. 그 얼마나 단조로운 시간들이던가.
그래서 지젤은 그가 조금이라도 색다르게, 남은 한 달을 보냈으면 했다.
휴 맥거원은 주말 아침에 신문을 집기 위해 버릇처럼 문을 열었다가 제 대문 앞에 서 있는 작은 소녀를 보고 깜짝 놀랐다. 소녀는 회색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숙였다. 휴는 잠깐동안 그녀가 집을 잘못 찾은 거라고 생각했지만, '안녕하세요, 맥거원 씨.' 라고 인사하는 모습에 그 가설을 내려놓아야 했다. 무슨 일로 왔냐고 물으면, 소녀는 옌시드에게 인사를 하러 왔다고 했다. 죽은지 오래 된 자신의 개를 입에 올리는 소녀를 보고 휴는 잔점이 남은 얼굴을 조금 찌푸렸다.
친구, 였어요. 옌시드와.
소녀는 옌시드가 작은 녹색공을 사랑한 이야기를 했고,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그걸 삼킬 뻔 해서 곤욕을 치룬 적도 있었으며, 식물 화분을 보면 자꾸 넘어뜨리곤 했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 쯤 되니 휴는 그녀가 정말 옌시드와 친구이긴 했던 것 같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건 몰라도 공을 삼킬뻔한 이야기는 남들이 알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휴는 잔인한 이야기를 해야 했다.
미안하지만 옌시드는 세상을 떠난지 제법 됐네.
알고, 있어요. 뜰에, 있잖아요.
그러면서 소녀는 지금은 피지 않은 코스모스 화단 쪽을 가리켰다. 휴는 속으로 목을 울렸다. 휴는 옌시드가 죽은 뒤 뜰에 묻었다. 이듬해 가을에는 옌시드의 무덤에 주홍색 코스모스가 피었다. 옌시드의 무덤 위에 코스모스가 피었다는 건 휴와 이웃밖에 몰랐다. 그런데 소녀가 안다는 건.
...스토커인가.
갑자기 소녀는 옌시드의 무덤 쪽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마치 거기에 개가 있는 것처럼. 휴는 아주 잠깐 이 이상한 소녀를 내보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소녀는 딱히 안에 들어오고 싶어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의심스러운 행동을 보이지도 않았기 때문에 휴는 일단 그녀를 그 자리에 머무르게 해도 별 일은 없겠다고 판단했다. 소녀는 그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잠시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다만, 조금 있다가 아주 다른 이야기를 했다.
...맥거원 씨. 여행, 가보셨어요?
젊었을 때 비슷한 것을 했다네.
휴는 대답해야 할 필요성을 그닥 느끼지 못하면서도 간략하게 대답했다. 입이 멋대로 내뱉은 탓이었다. 아주 어렸을 때 이후로 믿지도 않았던 마법 같은 일이었다.
배, 타고요?
...비슷하지.
소녀는 다시 코스모스 화단 쪽을 돌아보고 속삭였다.
그럼... 이번에는, 비행기를 타고... 여행 해보세요.
악의도, 의심스러운 기색도 없는 회색 눈동자가 느리게 깜빡였다가 조금 멀어졌다. 소녀가 뒤로 몇 발 물러났기 때문이었다. 휴는 소녀의 발치에 있었던 신문을 집어들기 위해 비로소 몸을 숙였다.
숙인 머리 위로 작은 목소리가 비처럼 떨어졌다.
제 부탁, 꼭... 생각해주세요.
고개를 들었을 때, 소녀는 없었다. 휴는 갑자기 사라진 소녀의 모습에 눈을 깜빡였을 뿐이었다. 바람결에 잘못 들은 탓인지는 몰라도, 소녀의 목소리가 남아 맴맴 돌았다. 조만간 또, 만나요. 맥거원 씨.
휴는 손에 쥔 신문을 조금 구겼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 이야기들을, 당사자들은 별로 내켜하지 않음이 분명했다. 살아있을 시절에 지젤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던 작은 소녀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사실 지젤로서는 그렇게 떠들어대는 사람들에게 별 감흥이 없었지만 까만 날개를 가진 제 동료는 그렇게 여기지 않는 듯했다. 비즈니스에 차질이 생기잖아. 예쁘장한 얼굴을 찌푸린 채 동료는 생전에는 피우지도 않았던 블랙체리스톤을 입에 물고 빨아당겼다. 딱히, 그런 것 같진... 않아. 지젤은 담배연기가 싫다고 생각했지만 콜록거리지도 않고 다만 가만히, 희뿌연 연기 속 어딘가에 남은 체리향을 들이쉬었을 뿐이었다. 불이 담배의 절반을 살라먹은 때에 동료는 말했다. 네 비즈니스는 잘 되고 있나봐, petite. 지젤은 그것이 사실이었으므로, 동료가 자신을 비꼬려는 의도로 말했음을 알았지만 그저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었다.
인간들이 천사와 악마로 흑백논리를 펼치는 통에 알지 못했던 사실은, 날개 색이 까맣고 하얀 것은 그저 선택의 문제였다는 것이다. 어떤 일을 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 육신이 죽은 뒤 영혼을 순리에 맞게 데려가는 자들은 하얀색 날개를, 순리를 거스를 수 있는 기회가 있는 인간들과 거래하는 자들은 까만색 날개를 지녔을 뿐이었다. 지젤은 전파를 타는 모든 이야기들이 그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는 걸 알고 있었다. 굳이 정정해줄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그녀는 그녀가 인도할 사람들에게만 진실을 알려주는 것으로 족했으므로.
지젤이 조만간 인도해야 하는 남자는 늙은 남자였다. 나이가 그렇게 많지는 않은 사람으로, 지젤은 아주 오랫동안 그를 지켜봐왔다. 그는 순리를 거스를 수 없는 이였고, 맨 처음에 그걸 알았을 때 지젤은 어린 아이가 순리를 거스를 수 없었을 때만큼 안타까웠다. 소녀는 그가 더 즐거운 삶을 보낸 뒤에야 순리를 따랐으면 했기 때문이었다. 휴 맥거원이라는 이름의 남자는 (같이 그를 관찰한 동료의 평가에 의하면) '약간 재미없는' 삶을 살고 있었으므로.
어쨌거나 지젤의 눈에 처음 그가 눈에 들어왔던 건, 늙은 개를 집에 들일 때부터였다. 그는 자신이 지켜보고 있었단 것을 모를 것이었다. 지젤이 생각하기에 남자는 참으로 굳건하게 저를 지탱하고 있었지만 기실 외로운 인간처럼 보였다.
남자는 매우 규칙적인 생활을 했는데, 늙은 개와 함께 살고 있었을 때엔 그나마 나았지만 늙은 개를 먼저 보낸 뒤에는 개와 보냈던 시간을 제외하고 또 métro-boulot-dodo*로 살아갔던 탓이었다. 그에게 어떤 운명적인 해프닝이 일어나는 일은 아주 적었다.
자기 전에 위스키를 마시고, 일어나서 출근을 하고, 수업을 하고, 집에 와서는 에세이를 채점하거나 잔업을 처리하고, 책을 읽거나 신문을 보거나 디스커버리 채널을 보고, 이웃집 남자에게 간간히 시달리고, 벽난로 위에 올라간 액자를 닦고(지젤은 이 때야 비로소 그가 해군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일부를 제외하고 모두가 행복해지는 명절이나 새해가 되면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결국 발신인에게로 돌려보내고야 말 티켓을 받고. 그 얼마나 단조로운 시간들이던가.
그래서 지젤은 그가 조금이라도 색다르게, 남은 한 달을 보냈으면 했다.
휴 맥거원은 주말 아침에 신문을 집기 위해 버릇처럼 문을 열었다가 제 대문 앞에 서 있는 작은 소녀를 보고 깜짝 놀랐다. 소녀는 회색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숙였다. 휴는 잠깐동안 그녀가 집을 잘못 찾은 거라고 생각했지만, '안녕하세요, 맥거원 씨.' 라고 인사하는 모습에 그 가설을 내려놓아야 했다. 무슨 일로 왔냐고 물으면, 소녀는 옌시드에게 인사를 하러 왔다고 했다. 죽은지 오래 된 자신의 개를 입에 올리는 소녀를 보고 휴는 잔점이 남은 얼굴을 조금 찌푸렸다.
친구, 였어요. 옌시드와.
소녀는 옌시드가 작은 녹색공을 사랑한 이야기를 했고,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그걸 삼킬 뻔 해서 곤욕을 치룬 적도 있었으며, 식물 화분을 보면 자꾸 넘어뜨리곤 했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 쯤 되니 휴는 그녀가 정말 옌시드와 친구이긴 했던 것 같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건 몰라도 공을 삼킬뻔한 이야기는 남들이 알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휴는 잔인한 이야기를 해야 했다.
미안하지만 옌시드는 세상을 떠난지 제법 됐네.
알고, 있어요. 뜰에, 있잖아요.
그러면서 소녀는 지금은 피지 않은 코스모스 화단 쪽을 가리켰다. 휴는 속으로 목을 울렸다. 휴는 옌시드가 죽은 뒤 뜰에 묻었다. 이듬해 가을에는 옌시드의 무덤에 주홍색 코스모스가 피었다. 옌시드의 무덤 위에 코스모스가 피었다는 건 휴와 이웃밖에 몰랐다. 그런데 소녀가 안다는 건.
...스토커인가.
갑자기 소녀는 옌시드의 무덤 쪽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마치 거기에 개가 있는 것처럼. 휴는 아주 잠깐 이 이상한 소녀를 내보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소녀는 딱히 안에 들어오고 싶어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의심스러운 행동을 보이지도 않았기 때문에 휴는 일단 그녀를 그 자리에 머무르게 해도 별 일은 없겠다고 판단했다. 소녀는 그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잠시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다만, 조금 있다가 아주 다른 이야기를 했다.
...맥거원 씨. 여행, 가보셨어요?
젊었을 때 비슷한 것을 했다네.
휴는 대답해야 할 필요성을 그닥 느끼지 못하면서도 간략하게 대답했다. 입이 멋대로 내뱉은 탓이었다. 아주 어렸을 때 이후로 믿지도 않았던 마법 같은 일이었다.
배, 타고요?
...비슷하지.
소녀는 다시 코스모스 화단 쪽을 돌아보고 속삭였다.
그럼... 이번에는, 비행기를 타고... 여행 해보세요.
악의도, 의심스러운 기색도 없는 회색 눈동자가 느리게 깜빡였다가 조금 멀어졌다. 소녀가 뒤로 몇 발 물러났기 때문이었다. 휴는 소녀의 발치에 있었던 신문을 집어들기 위해 비로소 몸을 숙였다.
숙인 머리 위로 작은 목소리가 비처럼 떨어졌다.
제 부탁, 꼭... 생각해주세요.
고개를 들었을 때, 소녀는 없었다. 휴는 갑자기 사라진 소녀의 모습에 눈을 깜빡였을 뿐이었다. 바람결에 잘못 들은 탓인지는 몰라도, 소녀의 목소리가 남아 맴맴 돌았다. 조만간 또, 만나요. 맥거원 씨.
휴는 손에 쥔 신문을 조금 구겼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 대도시 봉급자의 '지하철-일-잠'으로 반복되는 단조로운 생활패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