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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임라드리스의 밤

  임라드리스의 바닥에 내려앉은 낙엽들이 바람에 구르는 모습들은 발리노르로 가는 배가 떠나는 것과 흡사했다. 엘론드는 스산함이 잠든 바람 사이로 날아온 나무가 낳은 발리노르행 갈색 배 하나가 요정왕의 금발 위에 떨어진 것을 보다가 손을 뻗었다. 요정왕의 눈은 조용히 닫혀 있었다. 엘론드는 잠든 봄의 머리 위에서 배를 거둬냈다. 빛바랜 낙엽이 엘론드의 손에서 바스러졌다. 부스러기들을 부질없다는 듯 털어내며 엘론드가 눈을 느리게 감았다 떴을 때, 잠들었던 봄이 눈뜨고 있었다. 엘론드는 우아한 요정왕을 보며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어느덧 밤이 내릴 때였다. 엘론드의 검은 머리 위에 맴돌던 붉은 빛이 어둠 속으로 사라질 때즈음, 스란두일이 엘론드의 손을 잡아끌어 옆에 앉혔다. 엘론드로서는 쉬이 하지 않을 행동이었다. 이 교활한 요정왕이 자신보다 늘 자유로운 엘프였다는 걸 떠올리며 엘론드는 봄의 옅은 온기가 가신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스란두일이 달빛을 속눈썹 위에 걸친 채 엘론드의 눈을 바로 보았다. 마주한 하늘빛 눈동자와 그의 입가에 번지는 미소를 눈길로 쓰다듬던 엘론드가 손을 들어 손가락으로 스란두일의 긴 머리카락을 빗어내리기 시작했다. 스란두일은 그의 손을 거부하지 않았다. 엘론드는 제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금빛 머리카락을 무심한 듯 쥐었다가도 다정스레 굵게 잡고 살살 땋아내리기 시작했다. 그가 머리카락을 아프게 잡아당길 일은 없다는 걸 알았기에 스란두일은 턱을 괴었을 뿐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 말이 오고갈 필요는 없었다. 다만 말 대신 임라드리스를 스쳐지나가는 바람소리가 그들의 입술을 한 번씩 건드리고 사라질 뿐이었다. 영원에 가까운 삶을 살면서, 두 사람은 서로가 어떤 때에 어떤 말을 할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밀어는 영원 사이에서 소리 없이 나부꼈다.

  스란두일은 오만한 얼굴 그대로 엘론드를 돌아보았다. 엘론드의 무심해 보이는, 하지만 세상의 모든 지혜가 가득 담긴 얼굴이 그 돌아봄에 응했다. 스란두일은 제 머리의 끄트머리에서 헤매는 엘론드의 손을 다시 낚아채 손바닥에 입을 맞췄다. 손은 차가웠다. 그게 당연하다고 스란두일은 생각했다. 겨울녘의 새벽하늘처럼. 아니, 그게 맞았다. 엘론드는 별을 가득 인 지붕이었으므로. 스란두일의 미소가 파문을 인다. 흰꽃처럼 우아하게 미소 핀 그 입술 위로 엘론드가 입맞췄다. 스란두일은 늘 그랬듯이 그를 밀어내지 않았다. 입맞춤은 겨울밤처럼 길었고 봄날처럼 간지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