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3년(...) 이전에 썼던 언라이트 글합작 '시간이 없는 세계' 중 오후 3시, 루드.
* 이 이후로 언라이트를 안 해서 캐릭터 성격 같은 것도 정말 하나도 기억 안 난다. 캐붕이라도 어쩔 수 없다.
오후 나절의 상점은 무척이나 한가하다. 사실 가게 자체가 워낙 희한한 물건들을 파는 곳인지라 생필품의 수요와 공급을 맡고 있는 다른 가게들이 그렇듯이 붐빌 일이 거의 없다는 걸, 주인 자신 또한 잘 알고 있다.
루드는 앉은 자리에서 기지개를 폈다. 그러면 흔들의자가 기름칠 덜 된 문처럼 기괴한 소리를 냈다. 약간이지만 밴시를 닮아 날카롭게 찢어지는 나무의 비명소리가 한차례 가게 안을 뒤흔들고 지나간 뒤에는 다시 고요가 찾아왔다. 마치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기라도 하는 것처럼 변함없는 정적이었다.
이제야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제대로 자리 잡은 한가함이 빚어낸 평화 사이로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구석 어딘가에서 찍찍거리는 소리나 상점 바깥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그 어드메서 별 것 아닌 치들이 싸우는 소란이 섞여 들려오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마도에서는 흔한 일이다.
…아, 쥐는 흔하면 안 되지.
루드는 나른한 얼굴을 우아하지만 한편으론 무척이나 진솔하게 일그러뜨려 웃음을 짓고선 아무도 없는 상점을 곁눈질로 훑었다. 그가 꽃 다음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상점이었으며, 깔끔하고 세심한 성격으로 인해 정갈함을 그 무엇보다 우선으로 여기는 터라 상점 안에서는 그 어느 때든 먼지 한 톨 휘날리는 것조차 보기 힘들다. 가끔은 루드조차 본질을 다 파악하지 못한 깊은 창고로부터, 오래된 골동품들이 약간 굳은 먼지에 뒤덮인 채 보물처럼 나타나곤 했지만 그럴 때도 루드는 그 먼지를 박멸하기 위해 애를 쓰곤 했다. 그에게 먼지는 거의 천적이나 다름없는 탓이다. 먼지도 그러한데 하물며 쥐는 더더욱 안 된다. 쥐라는 놈들은 어디서 굴러들어오는지는 몰라도 무척이나 끈질긴 족속들이었다.
어쨌거나 쥐는 상점 내에 없다. 없을 것이다. 얼마 전에 그가 전부 구석구석에 약을 뿌려 그 가능성조차 없애버린 참이니 말이다. 그래서 루드는 미련 한 조각 남기지 않은 채 머릿속에서 쥐 생각을 지웠다. 때마침 포도주색 커튼이 쳐진 끝이 높고 세로로 긴 창문 너머에서 희미한 빛이 들어왔다. 틈새로 비집고 들어오는 얇은 빛이 날이 선 칼날처럼 보였다. 루드는 혀를 차고 제 흰 볼을 간질이는 머리카락을 긴 손가락으로 슬그머니 넘긴 뒤 창가로 다가가 커튼 새를 내다보았다. 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오늘의 마도는 의외로 날이 좋아서 볕이 잘 든다. 날이 조금 더 지면 꽃을 돌볼까. 루드는 상점 근처에 꾸려둔 작은 정원을 떠올렸다. 아마 오늘은 햇살이 따스한지라 꽃들 또한 좋아하리라.
루드는 커튼을 닫았다. 창밖을 내다봤지만 오가는 사람이 없다. 애초에 발길이 드문 곳이었다. 게다가 오늘은 언제 손님이 올 거라는 예고도 없었고, 오랫동안 상점을 운영한 덕에 생긴 감 또한 당분간 손님이 오진 않으리라는 걸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문득 차라도 마실까, 하고 생각했다. 한가하다는 것은 무료하다는 것과 비슷해서, 루드는 어차피 할 일도 없으니 시간을 좀 더 유익하게 보낼 겸 차를 준비하기로 했다. 해바라기의 꽃잎을 떠올리게 하는 노란 패턴들이 새겨진 찻잔과 포트를 꺼내 로즈마리를 넣는다. 그러면 로즈마리 특유의 향이 포트 속에서 부드럽게 표류하기 시작한다. 향은 무척 좋지만, 차를 마시자고 생각한 루드로서는 그 안에 뜨거운 물을 부어버리는 것밖에 도리가 없다.
얼마 지나지 않아 로즈마리의 고운 향이 주변에 진동했다. 차가 다 우러났다는 신호였다. 루드는 미리 조금 데워두었던 찻잔에 차를 따랐다. 맑게 찰랑이는 허브티를 이제 입가에 가져다대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을 때, 예기치 못하게 가게의 문이 열렸다. 루드는 반사적으로 인사를 내뱉으려다 입을 다물었다. 상점에 들어선 것은 볼 일을 보고 돌아온 메렌이었다. 그러니까 굳이 덧붙이자면 손님이 아닌, 내부인이다. 의례적인 인사 대신 새로 내뱉은 것은 ‘일찍 왔네요, 메렌.’ 이란 짧은 환영이었다. 메렌은 ‘세 시를 꽤 넘겨서 그런지 더워요.’ 하고 말한 뒤 성큼성큼 테이블로 다가와 그 위에 깔끔하고 절도 있는 동작으로 쓰고 있던 공단 모자를 내려놓으며 물었다.
“혼자만 차 마시는 건가요?”
루드는 어깨를 으쓱이며 얇은 입술을 끌어올렸다.
“당신도 드시겠어요? 메렌.”
“이런, 제 말은 그 뜻이 아니었는데….”
그러면요? 루드가 부드럽게 되물으며 메렌 몫의 찻잔을 꺼내는 동안 메렌이 남은 의자에 대강 걸터앉으며 대꾸했다.
“루드는 차를 마시면서 꽃들에게는 물을 주지 않느냐는 말이었어요.”
루드는 눈을 가늘게 뜨고 너무나도 당연한 것을 왜 묻냐는 듯이 말했다.
“이렇게 해가 높이 떠 있을 때에는 꽃에게 물을 주는 게 아니거든요.”
아하. 메렌은 미처 몰랐다는 듯 반응하면서 루드가 내미는 찻잔을 받아들었다. 루드는 메렌이 찻잔을 쥐는 것을 확인하고 제 몫의 찻잔을 들어 입술에 가져다대었다. 마시기 좋게 식은 허브티의 표면이 흔들렸다. 어느덧 시곗바늘은 4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 이 이후로 언라이트를 안 해서 캐릭터 성격 같은 것도 정말 하나도 기억 안 난다. 캐붕이라도 어쩔 수 없다.
오후 나절의 상점은 무척이나 한가하다. 사실 가게 자체가 워낙 희한한 물건들을 파는 곳인지라 생필품의 수요와 공급을 맡고 있는 다른 가게들이 그렇듯이 붐빌 일이 거의 없다는 걸, 주인 자신 또한 잘 알고 있다.
루드는 앉은 자리에서 기지개를 폈다. 그러면 흔들의자가 기름칠 덜 된 문처럼 기괴한 소리를 냈다. 약간이지만 밴시를 닮아 날카롭게 찢어지는 나무의 비명소리가 한차례 가게 안을 뒤흔들고 지나간 뒤에는 다시 고요가 찾아왔다. 마치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기라도 하는 것처럼 변함없는 정적이었다.
이제야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제대로 자리 잡은 한가함이 빚어낸 평화 사이로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구석 어딘가에서 찍찍거리는 소리나 상점 바깥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그 어드메서 별 것 아닌 치들이 싸우는 소란이 섞여 들려오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마도에서는 흔한 일이다.
…아, 쥐는 흔하면 안 되지.
루드는 나른한 얼굴을 우아하지만 한편으론 무척이나 진솔하게 일그러뜨려 웃음을 짓고선 아무도 없는 상점을 곁눈질로 훑었다. 그가 꽃 다음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상점이었으며, 깔끔하고 세심한 성격으로 인해 정갈함을 그 무엇보다 우선으로 여기는 터라 상점 안에서는 그 어느 때든 먼지 한 톨 휘날리는 것조차 보기 힘들다. 가끔은 루드조차 본질을 다 파악하지 못한 깊은 창고로부터, 오래된 골동품들이 약간 굳은 먼지에 뒤덮인 채 보물처럼 나타나곤 했지만 그럴 때도 루드는 그 먼지를 박멸하기 위해 애를 쓰곤 했다. 그에게 먼지는 거의 천적이나 다름없는 탓이다. 먼지도 그러한데 하물며 쥐는 더더욱 안 된다. 쥐라는 놈들은 어디서 굴러들어오는지는 몰라도 무척이나 끈질긴 족속들이었다.
어쨌거나 쥐는 상점 내에 없다. 없을 것이다. 얼마 전에 그가 전부 구석구석에 약을 뿌려 그 가능성조차 없애버린 참이니 말이다. 그래서 루드는 미련 한 조각 남기지 않은 채 머릿속에서 쥐 생각을 지웠다. 때마침 포도주색 커튼이 쳐진 끝이 높고 세로로 긴 창문 너머에서 희미한 빛이 들어왔다. 틈새로 비집고 들어오는 얇은 빛이 날이 선 칼날처럼 보였다. 루드는 혀를 차고 제 흰 볼을 간질이는 머리카락을 긴 손가락으로 슬그머니 넘긴 뒤 창가로 다가가 커튼 새를 내다보았다. 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오늘의 마도는 의외로 날이 좋아서 볕이 잘 든다. 날이 조금 더 지면 꽃을 돌볼까. 루드는 상점 근처에 꾸려둔 작은 정원을 떠올렸다. 아마 오늘은 햇살이 따스한지라 꽃들 또한 좋아하리라.
루드는 커튼을 닫았다. 창밖을 내다봤지만 오가는 사람이 없다. 애초에 발길이 드문 곳이었다. 게다가 오늘은 언제 손님이 올 거라는 예고도 없었고, 오랫동안 상점을 운영한 덕에 생긴 감 또한 당분간 손님이 오진 않으리라는 걸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문득 차라도 마실까, 하고 생각했다. 한가하다는 것은 무료하다는 것과 비슷해서, 루드는 어차피 할 일도 없으니 시간을 좀 더 유익하게 보낼 겸 차를 준비하기로 했다. 해바라기의 꽃잎을 떠올리게 하는 노란 패턴들이 새겨진 찻잔과 포트를 꺼내 로즈마리를 넣는다. 그러면 로즈마리 특유의 향이 포트 속에서 부드럽게 표류하기 시작한다. 향은 무척 좋지만, 차를 마시자고 생각한 루드로서는 그 안에 뜨거운 물을 부어버리는 것밖에 도리가 없다.
얼마 지나지 않아 로즈마리의 고운 향이 주변에 진동했다. 차가 다 우러났다는 신호였다. 루드는 미리 조금 데워두었던 찻잔에 차를 따랐다. 맑게 찰랑이는 허브티를 이제 입가에 가져다대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을 때, 예기치 못하게 가게의 문이 열렸다. 루드는 반사적으로 인사를 내뱉으려다 입을 다물었다. 상점에 들어선 것은 볼 일을 보고 돌아온 메렌이었다. 그러니까 굳이 덧붙이자면 손님이 아닌, 내부인이다. 의례적인 인사 대신 새로 내뱉은 것은 ‘일찍 왔네요, 메렌.’ 이란 짧은 환영이었다. 메렌은 ‘세 시를 꽤 넘겨서 그런지 더워요.’ 하고 말한 뒤 성큼성큼 테이블로 다가와 그 위에 깔끔하고 절도 있는 동작으로 쓰고 있던 공단 모자를 내려놓으며 물었다.
“혼자만 차 마시는 건가요?”
루드는 어깨를 으쓱이며 얇은 입술을 끌어올렸다.
“당신도 드시겠어요? 메렌.”
“이런, 제 말은 그 뜻이 아니었는데….”
그러면요? 루드가 부드럽게 되물으며 메렌 몫의 찻잔을 꺼내는 동안 메렌이 남은 의자에 대강 걸터앉으며 대꾸했다.
“루드는 차를 마시면서 꽃들에게는 물을 주지 않느냐는 말이었어요.”
루드는 눈을 가늘게 뜨고 너무나도 당연한 것을 왜 묻냐는 듯이 말했다.
“이렇게 해가 높이 떠 있을 때에는 꽃에게 물을 주는 게 아니거든요.”
아하. 메렌은 미처 몰랐다는 듯 반응하면서 루드가 내미는 찻잔을 받아들었다. 루드는 메렌이 찻잔을 쥐는 것을 확인하고 제 몫의 찻잔을 들어 입술에 가져다대었다. 마시기 좋게 식은 허브티의 표면이 흔들렸다. 어느덧 시곗바늘은 4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