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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Hess esh kal ahm non
더는 부르지 않아 잊은 용시가 있다.

이제와 정확히 따지자면 거의 다 잊은 줄 알았던 용시였다. 아주 오래토록 잊고 있었다 생각하였는데, 어느 순간 헤스 에쉬는 그 노래를 떠올렸다. 별 것 아닌 노래였고 걸음마 뗀 아기용만큼 구절이 서투른 시였다. 그러나 의미만큼은 명확하게 꽃처럼 피어나 별처럼 빛나는 노래였다. 형제가 살아있었을 무렵, 형제에게 불러주었던 노래.

이미 떠올려버린 이후에는 노래가 멈추지 않았다. 환상시는 잎사귀를 실은 바람처럼 헤스 에쉬를 감았고 매 순간 숨쉴 때마다 약속을 되새기게 했다. 폭풍이 불면, 여기로 와요. 따뜻한 날개 밑으로, 드린국화 피는 들녘으로, 바람 부는 황야로, 페리윙클 노래하는 땅으로, 너와 영원히, 함께 있을게. 영원히 함께 있을게. 그러나 헤스 에쉬는 배신자였다. 긴 생을 사는 용에게도 영원은 없었다.

또 다시 잊은 음률이 귓전을 때렸다. 동굴을 통하는 바람이 노래하고 있었다. 앞은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만큼 사색에 잠기기는 쉬웠다. 떠올려보면 지난 일은, 헤스 에쉬에게 이상하리만치 익숙했다. 헤스 에쉬는 꼬리 끝이 싸늘해지는 걸 느꼈다. 귓가를 때리던 옛적의 포효가 동굴에 울리는 듯 했다. 제 착각임은 알았지만 소리를 떨쳐내긴 힘들었다. 겁쟁이, 비겁자, 방관자, 도망자. 불순하고 오만하게 매도하던 그 모든 소리. 앞발을 들어올리던 형제의 모습이 스치고, 이윽고 얼굴을 찢는 듯한 환상통이 재차 헤스 에쉬를 관통했다. 하지만 그건 정말 아무 것도 아니었다. 자신은 결국 그토록 괴로워 하면서 발버둥쳤음에도 형제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죄책감이 마지막으로 찾아 왔을 때 헤스 에쉬는 눈을 더욱 꾹 감았다. 인간에게 죽어 이제는 없는 사룡의 권속, 더 이상 축복받을 수 없는, 영원히 저주받을 형제.

그때 내가 너와 함께 떠났다면 이야기가 달라졌을까. 내가 그때 너와 함께 인간 손에 죽었으면 너는 만족했을까. 용살자의 몸에 박혀 있던 수많은 눈은 나를 매도하는 너의 눈빛 같았는데. 복수하라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렸는데. 환상임을 앎에도 떨칠 수 없는 깊은 저주 같았는데. 그럼에도 앞으로 나아가고는 싶어서 발버둥치던 인고와 모순의 나날들이 있었다.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는 삶이었다.

헤스 에쉬는 눈을 감은 채, 천천히 잊었다 생각했던 음율을 노래했다.

폭풍이 불면, 여기로 와요.
따뜻한 날개 밑으로, 드린국화 피는 들녘으로,
바람 부는 황야로, 페리윙클 노래하는 땅으로...

나는 영원이란 말을 잊은 용시를 통해 너의 혼을 마주한다.
용서를 구하진 않을 테니, 다만 편히 안식하길.




Hess esh kal ahm non
잃은 노래를 통해 혼을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