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야."
우리 바다 가자. 카펫 위에 엎드려 중학교 숙제를 하고 있던 알렉산드로가 그렇게 말한 건 제법 갑작스러웠다. 까칠한 성장기 소년이 숙제를 하다 못해 지겨워서 때려치고 기껏해야 나가서 '졸라 맛있는 밥이나 먹자'고 말할 거라 생각했는데 뜬금없이 바다라니. 아직 날이 쌀쌀할 때였고 로물루스는 외출할 때마다 여전히 초록색 목도리를 두르고 다녔다. 그런 날씨에? 그렇지만, 아주 오래 전 신화에 가까운 시대에 아우를 죽이고 로마를 세운 남자임에도 로물루스는 사샤의 부탁을 거절할 만한 위인이 못 됐다. 알렉산드로 파치라는 소년의 부탁이기 때문이었다. 레무스를 닮은, 까칠하고 당당한, 로물루스의 인생 축에서 유일하게 같은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소중한 소년.
로미는 시계를 보았다. 얼마 전에 시계점에서 사온 깔끔한 흑백의 시계가 저녁 8시가 넘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로미는 사샤에게 도로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말이냐?"
"으은지, 인자 준비해가 나가면 춥다. 밤인디."
알렉산드로의 나폴리 사투리는 언제 들어도 특이하다. 하지만 성배전쟁 이후로부터 1년, 로물루스는 많은 것을 익히고 배웠다. 가장 먼저 익숙해진 것은 언어였다. 하여 이제 소년의 사투리쯤은 알아듣기 크게 어렵지 않았다. 로미가 덩치 큰 강아지처럼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에 산드로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니까 낼 가야지."
"그럼 내일 아침에 바닷가로 가면 되는 것이냐?"
"아니, 역."
"그럼 내일 아침에 바닷가로 가면 되는 것이냐?"
"아니, 역."
역? 농담이라고 받아들이기엔 사샤의 얼굴이 제법 진지하다. 로미는 바다를 보러 가자면서 바닷가로 가는 게 아니라고 말한 어린 소년을 이해하지 못해서 가만히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열다섯의 소년이 씩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갈라믄 쌈빡하이 가야지. 베네치아 갈끼다. 우리 돈 많다 아이가. 아쿠아 알타가 곧이그든. 희야 아쿠아 알타 함도 못 봤제? 테레비로만 보고."
"......!"
그리고 다음날. 정신을 차리자 어느새 베네치아행 기차에 앉아있었다. 로물루스는 텔레비전에서만 봤던 그 달리는 마차(라고밖에 아직은 생각할 수 없었다.) 안에 갑자기 자신이 앉아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서 연신 두리번거렸다. 알렉산드로는 작은 몸을 벌써 의자에 파묻고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뚱한 얼굴로 있었다. 로미는 슬그머니 고개를 숙여 눈높이를 맞추고 말을 걸었다.
"......!"
그리고 다음날. 정신을 차리자 어느새 베네치아행 기차에 앉아있었다. 로물루스는 텔레비전에서만 봤던 그 달리는 마차(라고밖에 아직은 생각할 수 없었다.) 안에 갑자기 자신이 앉아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서 연신 두리번거렸다. 알렉산드로는 작은 몸을 벌써 의자에 파묻고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뚱한 얼굴로 있었다. 로미는 슬그머니 고개를 숙여 눈높이를 맞추고 말을 걸었다.
"어디 불편한 것이 있느냐?"
"그야 이거, 희야 돈을 쓰는 기잖아."
"그야 이거, 희야 돈을 쓰는 기잖아."
그게 뭐가 뚱해지는 문제가 되는건지 모르겠어서, 로물루스는 가만히 눈을 깜빡이고만 있었다. 작은 사샤는 한숨을 푹 쉬고 다시 꿍얼거렸다.
"내가 얼른 커가지고, 돈 벌어가지고. 내 돈으로 희야 관광시키 줘야 안 되겠나. 지금처럼 희야 돈으로 기차표 끊는 게 아이라."
어쩌면 조금, 철 든 소리다. 아이가 그런 말을 했다는 게 괜히 뿌듯하기도 하면서, 로미는 제가 알고 있던 작은 사샤가 점점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알렉산드로는 도움 받는 것을 처음부터 당연하게 생각하는 아이는 아니었다. 사샤는 애초에 대가 없는 도움을 이상하게 여기고 의심하고 캐묻고, 그러다가 정말 대가를 바라지 않았던 것을 알게 된 이후에 당황스러워 하는 아이였다. 그러나 당황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도움 받은 것을 어떻게든 갚는 보답으로 돌아온다. 말하자면 자신이 수육하면서 얻게 된 수많은 재화에 대해 갚고자 하는 의미인 거겠지. 미묘한 기분이었다. 그들은 이제 가족이었고, 로미는 사샤에게 많은 것을 해주고 싶었다. 사샤가 자신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듯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내 돈을 쓰는 게 무엇이 어떻다는 말이냐. 아직 너는 어린아이잖느냐."
"그게 싫다는 기다. 내 꼬맹이 아이그든."
"그게 싫다는 기다. 내 꼬맹이 아이그든."
인지 열다섯이다. 사샤는 제가 열다섯을 들먹이면서도, 천 년을 넘게 살아온 로물루스 앞에서는 피라미라는 걸 알아서 괜히 더 얼굴을 시뻘겋게 붉혔다. 그 모습이 귀여워 로미는 저도 모르게 웃었다. 열차가 곧 출발합니다. 때가 되어 나온 안내방송에 로물루스가 잠깐 귀를 기울였다, 다시 사샤를 보았다. 의자에 푹 파묻힌 아이는 확실히, 앉은 키가 제가 기억하는 것보다는 많이 커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물루스의 눈에는 여전히 어려보였다. 열다섯. 아주 미묘한 나이다.
"하지만 너는 아직 작고 귀엽단다."
"은제까지 그르나 함 보자."
"은제까지 그르나 함 보자."
내 다달 아지매랑 약속했그든, 쑥쑥 커서, 희야보다 더 커져가지고, 어? ……
하지만 로미는 사샤의 다음 말을 들을 수 없었다. 기차가 출발하면서부터 소음이 커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소음 사이로 사샤가 뭐라 작게 중얼거린 것도 같았는데. 그러나 로미는 창밖을 돌아보느라 다시 물어보고자 했던 것을 잊어버렸다.
하지만 로미는 사샤의 다음 말을 들을 수 없었다. 기차가 출발하면서부터 소음이 커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소음 사이로 사샤가 뭐라 작게 중얼거린 것도 같았는데. 그러나 로미는 창밖을 돌아보느라 다시 물어보고자 했던 것을 잊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