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의 집은 세월이 오랜 집이었다. 양지바른 곳에 자리한 지라 대부분 볕이 잘 들었으나 어둠이 돌처럼 굳게 도사리고 있는 곳이 있었다. 햇빛이 차마 닿지 못한 창문 아래 어둠 속이라던가, 계단 밑 작은 수납장이라던가, 혹은 지젤의 작은 방문 뒤라던가. 그곳은 햇빛이 영 닿지 않았다. 그곳에선 먼지 냄새가 나요. 지젤은 잊을만 하면, 그것도 일요일마다 한 번씩, 조금 더러워진 걸레를 들고 그런 이야기를 했다. 휴는 그럴 때마다 청소에 더 신경을 써야겠다 생각을 했으나 지젤은 그 생각이 무색케도, 책냄새 같은 먼지 냄새예요. 라고 늘 덧붙였다. 하긴, 그들이든 그든 그녀든, 누군가는 언제나 조금씩 청소를 하고 있으니 먼지가 있을 리 없건만. 휴는 그래서 그 어두운 곳의 존재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러다가 휴가 그 나무와 먼지냄새로 희미하게 남은 장소의 기억을 되새긴 것은 지젤이 바로 그 나무 향기를 풍기며 조금 특이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때였다. 지젤은 어느 날 갑자기 크라프트지 봉투를 소중하게 끌어안고 오더니, 안에 뭐가 있는지 보여주지도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듯 태연하게 굴었으며, 심지어 불 켜지 않은 벽난로 앞에서 아주 오랜 버릇처럼 휴의 무릎에 머리를 뉘고 작은 새마냥 지저귀어야 할 적에도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꺼내지 않았다. 휴로서는 애초부터 전혀 묻지 않았고 물을 생각도 없었으나 약간의 상념 따위는 들어서, 아주 잠깐 그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생각을 했다가, 그냥 나중에 때가 되면 이야기를 하겠거니 여기고 다른 이야기들을 한참 들었다. 지젤은 옌시드와 산책을 갔는데 옌시드가 벤치를 아주 좋아했다는 이야기도 했고, 라라가 새로운 캔 간식이 마음에 들었는지 캔 소리만 나면 달려왔다고, 아까는 달려오다가 넘어졌다는 이야기도 했다. 휴는 그것만으로도 만족했다. 아마 캔 간식이었겠거니, 하는 생각도 한 켠에서 어렴풋했다.
그것말고 또 다른 모습이라고 한다면, 지젤이 주말에도 한참 방에 틀어박혀 있곤 했던 것으로, 그녀는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종적을 감춘 사람처럼 가만히 혼자 무얼 했다. 가끔은 함께 책을 읽는 시간마저 잊어버린 채 방에 틀어박혀 있어서 휴가 올라가야 했던 적도 있었다. 그 날, 휴는 작고 바스락거리는 소리들을 들었던 걸 기억했다. 아마 제가 불렀을 때 바로 내려가기 위해 반쯤 열어놓은 그녀의 방문을, 아주 조심스럽게 똑똑 두드렸을 때, 열린 문 바로 뒤에서 무언가를 허둥지둥 정리하는 기색과 함께 지젤이 내던 다급한 네, 네. 하던 목소리들, 그리고 그 너머에서 들린, 그러니까, 작은 종이들의 소리. 오랜 시간 동안 책과 함께 해온 세월이 있어 종이 소리를 구별 못할 그가 아니었지만 휴는 끝내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묻는 대신, 지젤이 최근에 읽기 시작한 작은 아씨들을 평소보다 성심성의껏 봐주었을 뿐이었다.
그로부터 꼬박 일주일이 지난 뒤였다.
휴는 지젤이 조금 들떠 있다는 걸 눈치챘다. 지젤은 속으로 뭔가에 정신이 한참 팔려 있다가 우유를 오래 끓게 했고, 평소보다 바나나 팬케이크를 빨리 먹었다. 지젤은 목이 메였는지 가슴을 주먹으로 토닥토닥 두드렸다가 곧 입가에 라일락 같은 웃음을 띄운 채 휴를 바라보았다. 선생님. 휴는 메이플 시럽의 흔적이 조금 남은 접시 위로 포크를 내려놓으며 그녀의 시선에 응했다. 선물이, 있어요. 선물? ...네.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휴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고, 그 모습을 본 지젤은 새가 날아가듯 2층으로 향했다. 발걸음이 멀어진 동안 휴는 접시를 싱크대에 넣었다. 바닥에선 옌시드가 기분 좋은지 색색거리며 녹색 공을 끌어안고 있다가 엉덩이를 흔들며 휴의 다리에 찰싹 달라붙었다. 휴는 허리를 숙여 털이 북실북실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는 동안 작은 발소리가 다시 가까워졌다. 휴는 고개를 들었다. 그의 영원한 소녀가 얇은 원피스 자락을 팔락이며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 품에는, 작은 크라프트지 상자.
지젤은 테이블로 다가와 잠깐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품에 안은 것을 내려놓았다. 안에선 바삭거리는 소리가 났다. 휴는 상자 앞으로 가, 손을 들어 덮개를 쓸었다. 안에는 그닥 거창한 게 들어있진 않은듯 했다. 아까의 소리로 짐작컨대, 아무래도 가벼운 것들. 하지만 휴는 그 안에 담긴 마음마저 가벼울 거라곤 결코 생각하지 않았다. 지젤은 반짝이는 눈으로 휴를 바라보았다. 휴는 잠시 비 개인 하늘 속에 빠져들었다. 열어보세요. 그렇게 말하는 소녀의 볼은 퍽 붉었다. 수줍은 모양이었다.
상자 안에는, 어떤 쪽지들이 가득 든 코르크 마개의 유리병 하나와, 동물 모양으로 접힌 종이접기들이 가득 했다. 분명히, 웰시코기 몇 마리와, 고양이 몇 마리, 그리고 빨갛고 파란색 색종이로 접은 새들. 종이로, 접은 거... 쓸데없지만... 그래도. 편지도, 썼어요. ...유리병, 안에. 지젤이 변명처럼 말했다. 그제야 걱정이 조금씩 되기 시작한지 약간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집안 곳곳에 숨어 있는 어둠이 묻은 듯도 했다. 휴는 손을 뻗어 지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전혀 쓸데없지 않아. 그 말에 지젤은 겨우 웃었다. 그 웃음 사이로 사랑이 빛처럼 흘렀다.
휴는 곧 알게 될 것이다. 지젤 블루버드가 휴 맥거원을 사랑해 온 시간을 눈으로 오래 볼 수 있도록 남기고 싶어서 택한 것이 종이접기라는 것을, 그녀가 한참 종이를 접고 작은 종이에 전하고 싶은 말을 나눠 쓰는 동안 자신을 많이 생각하였음을, 그 작은 종이들 안에 그녀의 수많은 시간이 녹아 있음을. 그것들 중 어느 것도 미리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지젤은 테이블을 돌아, 휴를 폭 끌어안았다. 좋아해요. 이 말도, 분명히 접은 종이들 속에.
그러다가 휴가 그 나무와 먼지냄새로 희미하게 남은 장소의 기억을 되새긴 것은 지젤이 바로 그 나무 향기를 풍기며 조금 특이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때였다. 지젤은 어느 날 갑자기 크라프트지 봉투를 소중하게 끌어안고 오더니, 안에 뭐가 있는지 보여주지도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듯 태연하게 굴었으며, 심지어 불 켜지 않은 벽난로 앞에서 아주 오랜 버릇처럼 휴의 무릎에 머리를 뉘고 작은 새마냥 지저귀어야 할 적에도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꺼내지 않았다. 휴로서는 애초부터 전혀 묻지 않았고 물을 생각도 없었으나 약간의 상념 따위는 들어서, 아주 잠깐 그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생각을 했다가, 그냥 나중에 때가 되면 이야기를 하겠거니 여기고 다른 이야기들을 한참 들었다. 지젤은 옌시드와 산책을 갔는데 옌시드가 벤치를 아주 좋아했다는 이야기도 했고, 라라가 새로운 캔 간식이 마음에 들었는지 캔 소리만 나면 달려왔다고, 아까는 달려오다가 넘어졌다는 이야기도 했다. 휴는 그것만으로도 만족했다. 아마 캔 간식이었겠거니, 하는 생각도 한 켠에서 어렴풋했다.
그것말고 또 다른 모습이라고 한다면, 지젤이 주말에도 한참 방에 틀어박혀 있곤 했던 것으로, 그녀는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종적을 감춘 사람처럼 가만히 혼자 무얼 했다. 가끔은 함께 책을 읽는 시간마저 잊어버린 채 방에 틀어박혀 있어서 휴가 올라가야 했던 적도 있었다. 그 날, 휴는 작고 바스락거리는 소리들을 들었던 걸 기억했다. 아마 제가 불렀을 때 바로 내려가기 위해 반쯤 열어놓은 그녀의 방문을, 아주 조심스럽게 똑똑 두드렸을 때, 열린 문 바로 뒤에서 무언가를 허둥지둥 정리하는 기색과 함께 지젤이 내던 다급한 네, 네. 하던 목소리들, 그리고 그 너머에서 들린, 그러니까, 작은 종이들의 소리. 오랜 시간 동안 책과 함께 해온 세월이 있어 종이 소리를 구별 못할 그가 아니었지만 휴는 끝내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묻는 대신, 지젤이 최근에 읽기 시작한 작은 아씨들을 평소보다 성심성의껏 봐주었을 뿐이었다.
그로부터 꼬박 일주일이 지난 뒤였다.
휴는 지젤이 조금 들떠 있다는 걸 눈치챘다. 지젤은 속으로 뭔가에 정신이 한참 팔려 있다가 우유를 오래 끓게 했고, 평소보다 바나나 팬케이크를 빨리 먹었다. 지젤은 목이 메였는지 가슴을 주먹으로 토닥토닥 두드렸다가 곧 입가에 라일락 같은 웃음을 띄운 채 휴를 바라보았다. 선생님. 휴는 메이플 시럽의 흔적이 조금 남은 접시 위로 포크를 내려놓으며 그녀의 시선에 응했다. 선물이, 있어요. 선물? ...네.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휴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고, 그 모습을 본 지젤은 새가 날아가듯 2층으로 향했다. 발걸음이 멀어진 동안 휴는 접시를 싱크대에 넣었다. 바닥에선 옌시드가 기분 좋은지 색색거리며 녹색 공을 끌어안고 있다가 엉덩이를 흔들며 휴의 다리에 찰싹 달라붙었다. 휴는 허리를 숙여 털이 북실북실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는 동안 작은 발소리가 다시 가까워졌다. 휴는 고개를 들었다. 그의 영원한 소녀가 얇은 원피스 자락을 팔락이며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 품에는, 작은 크라프트지 상자.
지젤은 테이블로 다가와 잠깐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품에 안은 것을 내려놓았다. 안에선 바삭거리는 소리가 났다. 휴는 상자 앞으로 가, 손을 들어 덮개를 쓸었다. 안에는 그닥 거창한 게 들어있진 않은듯 했다. 아까의 소리로 짐작컨대, 아무래도 가벼운 것들. 하지만 휴는 그 안에 담긴 마음마저 가벼울 거라곤 결코 생각하지 않았다. 지젤은 반짝이는 눈으로 휴를 바라보았다. 휴는 잠시 비 개인 하늘 속에 빠져들었다. 열어보세요. 그렇게 말하는 소녀의 볼은 퍽 붉었다. 수줍은 모양이었다.
상자 안에는, 어떤 쪽지들이 가득 든 코르크 마개의 유리병 하나와, 동물 모양으로 접힌 종이접기들이 가득 했다. 분명히, 웰시코기 몇 마리와, 고양이 몇 마리, 그리고 빨갛고 파란색 색종이로 접은 새들. 종이로, 접은 거... 쓸데없지만... 그래도. 편지도, 썼어요. ...유리병, 안에. 지젤이 변명처럼 말했다. 그제야 걱정이 조금씩 되기 시작한지 약간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집안 곳곳에 숨어 있는 어둠이 묻은 듯도 했다. 휴는 손을 뻗어 지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전혀 쓸데없지 않아. 그 말에 지젤은 겨우 웃었다. 그 웃음 사이로 사랑이 빛처럼 흘렀다.
휴는 곧 알게 될 것이다. 지젤 블루버드가 휴 맥거원을 사랑해 온 시간을 눈으로 오래 볼 수 있도록 남기고 싶어서 택한 것이 종이접기라는 것을, 그녀가 한참 종이를 접고 작은 종이에 전하고 싶은 말을 나눠 쓰는 동안 자신을 많이 생각하였음을, 그 작은 종이들 안에 그녀의 수많은 시간이 녹아 있음을. 그것들 중 어느 것도 미리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지젤은 테이블을 돌아, 휴를 폭 끌어안았다. 좋아해요. 이 말도, 분명히 접은 종이들 속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