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이는 더위를 참으며 옆 고등학교 교문 앞에 서 있었다. 여름답게 해가 졌지만 아직 충분히 더워 등줄기에서 땀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아까 세수를 한 덕에 견딜만 해서 다행인가. 그렇게 서 있자니 하교하는 학생들이 교문을 나서면서 노이를 한 번씩 흘끔거리는 게 느껴졌다. 누구 데리러 왔나봐, 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눈치를 보는 게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선생님 분위기는 아무래도 가릴 수가 없는 법이니까. 보건교사이긴 하지만. 그래도 특히나 하루종일 선생님들에게 시달렸던 학생들이라면 더더욱 그 분위기에 예민할 테다.
그러나 예민함으론 노이도 지지 않는 편이었다. 애써 아이들과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쓰면서 그는 괜히 앞머리를 매만졌다. 일 조금 더 하고 나올걸 그랬다. 어차피 테리우스와 메리도 결국은 둘이서 지지고 볶으며 알아서 집에 갈 텐데 뭐하러 나는 여기까지 나와 있는지. 아무리 에페스 씨에게 애들을 부탁받은 몸이라지만…… 아니다, 오늘은 그래도 겸사겸사 데리고 가는 게 맞다. 애들과 같이 장도 봐야하고, 애들이 있으면 짐을 들기도 편하니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중 갑자기 휴대폰이 울렸다. 테리우스로부터의 문자였다.
[ 쌤ㅈㅅㅈㅅ 메리 벌청소 덜 끝남 ㅠ 금방하고갈게여 ]
아무래도 오늘 학교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보다. 벌청소라니. 노이는 [ 교문 근처에 있을게, 천천히 와 ] 라고 답신한 뒤 앉을만한 자리가 없는지 둘러보았다. 마침 교문 근처의 경비실이 보인다. 그리고 그 옆의 작은 의자도. 노이는 괜히 눈을 한 번 굴리고 슬그머니 경비실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노이의 행동이 조심스러운 건 다 이유가 있었다. 얼마 전에 테리우스와 그 친구들에 휘말려 한밤중에 이 학교를 탐험하던 중, 수위와 마주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지금 여기에 있다면 어색한 분위기를 어떻게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슬쩍 창문 안을 기웃거렸는데, 안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다행인 일이다. 노이는 낮은 나무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그늘 속에 몸을 숨긴 뒤 한숨을 돌렸다. 그러던 중 옆에서 끼익, 하는 소리가 났다. 자동적으로 고개를 퍼뜩 든 노이는 몸을 쭈뼛 굳혔다.
“……어쩐 일이십니까.”
무미건조한, 동굴 같은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떨어졌다. 경비실 안쪽에서 그때 그 수위가 고개를 내민 것이다. 노이는 공포에 가까운 감각을 느끼며 입을 뗐다.
“아, 아, 아까까진 없었잖아요?!”
사내가 대답 없이 고개를 주억거린다. 그러고 보니 안쪽에 문이 하나 더 있었던 것 같다. 만일 화장실 같은 공간이 딸려있는 거라면 아까 잠깐 없었던 이유는, 거기 있었던 건가? 노이는 무릎 위에서 주먹을 꼭 말아쥐었다.
“오늘은 수상한 이유 때문이 아니고요. 애, 애들 기다리는 중이에요.”
“……애들?”
“저번에 보신 그 애들요.”
“과보호가 심하군.”
“아니거든요. 애들이랑 장 보고 밥 같이 먹으려고 하는 거거든요.”
무슨 친척 같이 말하는 것 같지만. 뭐, 그렇게 오해해도 상관은 없다. 반쯤은 그런 모양새니까. 옆집 친한 남자가 삼촌이 되고 여자가 이모가 되는 그런 느낌으로. 그늘 안에 있지만 괜히 더 열이 뻗쳐 홧홧해지는 기분이었다. 노이는 손을 들어 얼굴에 파닥파닥 부채질을 했다. 그러자 아까까진 느껴지지 않았던 시원한 바람이 손가락 끝에서 한 줄기 느껴지는 듯했다. 뭐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위를 둘러본 선생은 곧 수위의 뒤쪽에서 찬바람이 나오고 있음을 깨달았다. 에어컨이다!
“나, 나 잠깐만 안에 들어가도 돼요?”
“왜?”
“더워서요. 에어컨 트신 것 같은데 같이 좀 쐬죠?”
사내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노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막무가내로 그에게 달려들었다. 사내는 순순히 물러나며 그 좁은 공간에 선생을 초대하고선 문을 닫았다. 이마를 쓰다듬는 찬바람을 느끼자 노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단추를 두어 개 풀어헤친 덕에 목덜미도 금세 시원해졌다.
“고마워요. 잠깐만 있을게요. 애들 올 때까지만.”
사내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선생을 그저 빤히 쳐다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노이는 그가 왜 저를 그렇게 쳐다보는지 알 수 없어서 동그란 안경 너머에서 동그래진 눈을 깜빡였다. 왜냐고 묻고 싶었지만 이상하게도 차마 물을 수가 없었다. 마주한 사내의 눈은 어쩐지 붉은 기운이 돌았다. 해질녘 태양 같기도 했다. 노이는 묘한 기분이 드는 것을 애써 외면하면서 다른 이야길 했다.
“그러고 보니, 수위 선생님 이름을 몰라요.”
“선생님 아니라고 했는데.”
“난 그렇게 부를 거예요.”
“……여전히 고집쟁이로군.”
사내가 작은 한숨을 뱉는다. 고집쟁이. 다시 한 번 그렇게 말하는 것 같은 시선을 보다가 노이는 입을 비죽거리고는 제가 먼저 말했다.
“노이예요. 선생님은요?”
“크로울리. 로울이라 불러도 된다.”
그리곤 정적. 시계를 보니 아직 20분도 안 지났다. 노이는 애들이 얼마나 더 걸리려나 생각하며 괜히 제 옷매무새를 바로 했다. 그러는 노이를 보던 크로울리가 문득 말을 던졌다.
“그러고 퇴근할 건가?”
“네?”
“……모르면 됐다.”
“왜요, 왜, 뭔데요?!”
크로울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고집이 센 건 당신 쪽이잖아?! 노이는 부루퉁해진 얼굴로 사내를 바라보다가 제 차림을 이래저래 살펴보았다. 하지만 영 모르겠다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니, 크로울리가 턱짓으로 화장실을 가리킨다.
“가서 거울 봐라.”
노이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 순순히 그의 말에 따랐다.
그리고 잠시 후, 안에서는 민망함으로 가득한 비명이 울려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