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인가, 작은 새는 문득 바다가 보고 싶다고 했다. 휴는 커피를 막 내려 마시다말고 지젤을 바라보았다. 지젤은 동화책을 읽고 있었는데 바로 그 속에 바다 그림이 한가득 있었다. 지젤은 너무 많이 읽어 끝이 너덜너덜해진 종이 위를 손으로 쓸며 바다를 본 기억이 별로 없다고 부끄러운 듯 말했다. 어릴 적에 가본 게 다라고 덧붙이는 걸 듣던 휴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다음주 주말은 야외수업이 좋겠군. 지젤은 휴의 말이 조금 이해가지 않는다는듯 눈을 껌뻑였다가, 고개를 갸웃하기도 했다가, 아주 뒤늦게 그가 무슨 의미로 그 말을 했는지를 깨닫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휴는 짧은 순간 매우 다양한 표정을 구사하는 지젤을 보고 잠깐 웃었다.
그렇게 가게 된 바다였다.
두 사람이 바다에 가게 된 날은 날씨가 좋다못해 내리쬐는 햇빛은 뙤약볕에 가까웠던지라 지젤은 챙이 넓은 밀짚모자를 썼다. 파도는 잔잔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봄이라 바람만큼은 찼다. 도톰한 카디건의 감촉이 살갗을 간질이는 게 기분이 좋은지 지젤은 자꾸 팔을 문질렀다. 휴는 그녀가 묘하게 들떠있다는 걸 눈치챘다. 멀리 해변가에 발자국을 남기는 갈매기를 보고 작은 탄성을 터뜨리거나 신을 벗고 축축한 모래에 발을 담근 채로 밀려오는 찬 바닷물과 흰 거품에 살을 적시는 모습들에서 다 티가 났던 것이다. 마치 소녀 같은 여인은 아주 작은 조개 껍데기를 주워서 보여주기도 하고, 주운 소라 껍데기를 바닷물에 씻어 귀에 갖다대기도 했다. 그러다가 죽은 불가사리를 집어 곧장 살아날 거라고 믿는 양 바닷물에 다시 넣어주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지젤의 흰 피부에 모래와 물기가 자꾸만 묻었다. 휴는 그 얼룩들을 보다가 이젠 끊임없이 흘러내려 모든 흔적을 지워대는 모래에 발로 끈질기게 그림을 그리는 그녀가 혹여나 넘어질까 좀 더 가까이 다가가 한쪽 손을 잡아주었다. 행복한 회색 눈이 그를 올려다보다가 웃고, 작은 손에 좀 더 힘이 들어왔다. 이제 그녀는 발로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그러다 모자가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바닷바람이 챙을 잡고 들어올린 탓이었다. 지젤은 일순간 벌어진 상황에 얼른 반응하지도 못했고, 아차하는 순간 모자는 저 멀리 바다 쪽으로 낙하산처럼 느리게 떨어져버렸다. 잔잔히 일렁인다곤 해도 바다는 바다다. 정신을 놓고 있으면 모자는 폭풍우 속을 헤매는 배처럼 심연으로 삼켜지고 말 터였다. 지젤은 허둥대다가 모자 쪽으로 황급히 발을 옮기려 들었다.
그러나 더 먼저 움직인 것은 그녀가 아니라 휴였다.
지젤은 어쩐지 그 광경이 믿기지 않아서 그 자리에 우뚝 멈춰서서, 그녀가 사랑하는 늙은 남자의 뒷모습이 아무렇지도 않게 바다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것을 넋놓고 바라보다가 선생님, 하고 애타게 불렀다. 어느샌가 제 손을 놓고 멀리 가버렸다는 게 야속해서가 아니라 신을 벗지도 않은 그의 발이 바닷물에 젖는 것이, 깔끔하게 떨어지던 바지가 그의 발목과 종아리에 달라붙는 게, 그 위로 흰 거품이 피어오르는 것이 안타까워서였다. 선생님, 선생님── 휴. 발을 동동 구르며 지젤이 계속 그를 불렀다. 휴는 잠시 그녀의 부르는 목소리를 무시한 채 점점 더 걸어 들어갔다. 모자는 그리 멀리 있지 않았다. 다만 금세 멀어질 것 같이 너울거릴 뿐이었다. 휴는 해군으로 살아온 시절만큼 바다가 얼마나 무섭고 변덕스러운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빨리 모자를 낚아챘다. 그 바람에 그의 무릎 위까지가, 그리고 재킷의 소매와 팔꿈치가 다 젖어버렸지만 휴는 신경 쓰지 않았다. 짠내가 풍기는 모자를 들고 모래 위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지젤에게 말없이 돌아갔을 뿐이었다. 죄송해요, 선생님... 저 때문에. 해변가에서 다시 만난 지젤은 울 것 같은 얼굴을 하며 고개를 떨구었다. 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멀리 파도 소리에 섞여서 들리던 지젤의 목소리를 되새겼다. 제 이름을 부르던 목소리였다. 지젤. 침묵의 시간을 끝내고 그녀를 부르면 작은 여인이 고개를 들었다. 신경 쓰지 말게. 휴는 다만 그 한 마디만 겨우 할 수 있었다. 그러면 지젤은 우는 것도 웃는 것도 아닌 얼굴을 한 채 말했다. 하지만... 선생님이, 감기 걸리는 건, 싫어요. 바다보다, 선생님이... 더, 중요한... 걸요. 휴는 이번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가게 된 바다였다.
두 사람이 바다에 가게 된 날은 날씨가 좋다못해 내리쬐는 햇빛은 뙤약볕에 가까웠던지라 지젤은 챙이 넓은 밀짚모자를 썼다. 파도는 잔잔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봄이라 바람만큼은 찼다. 도톰한 카디건의 감촉이 살갗을 간질이는 게 기분이 좋은지 지젤은 자꾸 팔을 문질렀다. 휴는 그녀가 묘하게 들떠있다는 걸 눈치챘다. 멀리 해변가에 발자국을 남기는 갈매기를 보고 작은 탄성을 터뜨리거나 신을 벗고 축축한 모래에 발을 담근 채로 밀려오는 찬 바닷물과 흰 거품에 살을 적시는 모습들에서 다 티가 났던 것이다. 마치 소녀 같은 여인은 아주 작은 조개 껍데기를 주워서 보여주기도 하고, 주운 소라 껍데기를 바닷물에 씻어 귀에 갖다대기도 했다. 그러다가 죽은 불가사리를 집어 곧장 살아날 거라고 믿는 양 바닷물에 다시 넣어주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지젤의 흰 피부에 모래와 물기가 자꾸만 묻었다. 휴는 그 얼룩들을 보다가 이젠 끊임없이 흘러내려 모든 흔적을 지워대는 모래에 발로 끈질기게 그림을 그리는 그녀가 혹여나 넘어질까 좀 더 가까이 다가가 한쪽 손을 잡아주었다. 행복한 회색 눈이 그를 올려다보다가 웃고, 작은 손에 좀 더 힘이 들어왔다. 이제 그녀는 발로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그러다 모자가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바닷바람이 챙을 잡고 들어올린 탓이었다. 지젤은 일순간 벌어진 상황에 얼른 반응하지도 못했고, 아차하는 순간 모자는 저 멀리 바다 쪽으로 낙하산처럼 느리게 떨어져버렸다. 잔잔히 일렁인다곤 해도 바다는 바다다. 정신을 놓고 있으면 모자는 폭풍우 속을 헤매는 배처럼 심연으로 삼켜지고 말 터였다. 지젤은 허둥대다가 모자 쪽으로 황급히 발을 옮기려 들었다.
그러나 더 먼저 움직인 것은 그녀가 아니라 휴였다.
지젤은 어쩐지 그 광경이 믿기지 않아서 그 자리에 우뚝 멈춰서서, 그녀가 사랑하는 늙은 남자의 뒷모습이 아무렇지도 않게 바다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것을 넋놓고 바라보다가 선생님, 하고 애타게 불렀다. 어느샌가 제 손을 놓고 멀리 가버렸다는 게 야속해서가 아니라 신을 벗지도 않은 그의 발이 바닷물에 젖는 것이, 깔끔하게 떨어지던 바지가 그의 발목과 종아리에 달라붙는 게, 그 위로 흰 거품이 피어오르는 것이 안타까워서였다. 선생님, 선생님── 휴. 발을 동동 구르며 지젤이 계속 그를 불렀다. 휴는 잠시 그녀의 부르는 목소리를 무시한 채 점점 더 걸어 들어갔다. 모자는 그리 멀리 있지 않았다. 다만 금세 멀어질 것 같이 너울거릴 뿐이었다. 휴는 해군으로 살아온 시절만큼 바다가 얼마나 무섭고 변덕스러운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빨리 모자를 낚아챘다. 그 바람에 그의 무릎 위까지가, 그리고 재킷의 소매와 팔꿈치가 다 젖어버렸지만 휴는 신경 쓰지 않았다. 짠내가 풍기는 모자를 들고 모래 위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지젤에게 말없이 돌아갔을 뿐이었다. 죄송해요, 선생님... 저 때문에. 해변가에서 다시 만난 지젤은 울 것 같은 얼굴을 하며 고개를 떨구었다. 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멀리 파도 소리에 섞여서 들리던 지젤의 목소리를 되새겼다. 제 이름을 부르던 목소리였다. 지젤. 침묵의 시간을 끝내고 그녀를 부르면 작은 여인이 고개를 들었다. 신경 쓰지 말게. 휴는 다만 그 한 마디만 겨우 할 수 있었다. 그러면 지젤은 우는 것도 웃는 것도 아닌 얼굴을 한 채 말했다. 하지만... 선생님이, 감기 걸리는 건, 싫어요. 바다보다, 선생님이... 더, 중요한... 걸요. 휴는 이번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