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비스커스는 대장간 일이나 갑주제작에 손을 대본 적이 없다. 때문에 요리나 재봉에 대해서는 조금 알지라도, 철을 다루는 지식에는 조예가 얕았다. 철기에는 물을 묻히는게 아니라 기름을 문혀야 된다는 정도의 몹시 얄팍한 정도만을 지니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오랜 시간 호수에 잠겨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사내의 투구에, 자칫하면 녹이 슬 것 같다는 생각을 잠깐했다.
퍽 때늦은 생각이었다.
동부 다날란의 밤바람이 앉은 자리로 들이닥쳤다. 사막의 밤은 춥다고 하더니 정말로 공기가 시렸다. 불타는 장벽 너머로 사라지는 바람의 흔적을 쫓던 히비스커스는 거리를 두고 앉은 사내를 돌아보았다. 녹슬 것 같은 투구는 벗어서 제 옆에 내려둔 채였다. 자신의 제안으로 해제한 무장이었고 그 덕에 히비스커스는 알레트의 옆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있었다. 밤그늘이 묻었기에 시야가 선명하지는 않았다. 역으로 말하면 자신에게도 어둠이 내렸을 것이란 뜻이었다. 그것만큼은 조금 달가웠다. 자신이 그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그가 알아채기 힘들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알레트는 이곳보다는 설원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설원의 고목같은 사람이 모래땅에서 쉬어간다는 아이러니함. 사막의 더위에 노출되었으니 녹지 않았을까. 허튼 생각 또한 잠깐 들었다. 얼음이 녹아 물이 되면, 추위에 익숙해진 고목의 창과 투구에 그 물이 스미리라. 철에 물이 닿으면 녹이 슬기 마련이다.
아니, 사실은 이미 녹이 슬어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때늦은 생각이었다. 우르드의 샘에서 깨어난 직후 그가 보였던 모든 모습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전부 알고 있던 것보다 조금 다른 모습들이었다. 그래도, 그럼에도 사실은 아무래도 다 좋았으므로.
샘에서 부활한 야만신이 별의 바다를 항해함을 그만두고 약속을 지키러 와준 것만으로 충분했다.
녹이 슬었다면 더 부식되기 전에 기름칠을 하고, 녹을 닦아내어 빛나게끔 노력하면 된다. 퇼지도 모른다. 사실 안 되어도 좋을 것이다. 녹슨 건 녹슨 것 나름대로 아름답다. 아주 오래된 성의 정원이 덤불이어도 좋듯이, 낡은 양피지에 적힌 어떤 이름들이 사랑스럽듯이.
녹이 슨 관계라도 좋을 욕심이었다. 이름처럼 남몰래 간직한 어떤 욕망이 빚어낸, 처음으로 품은 욕심.
어둠 속에서 침묵을 간직한 채 부동하는 사내를 가만 보던 중에, 히비스커스는 문득 그를 불렀다.
알레트?
그러면 어둠이 움직이고. 별빛을 업은 용기사이자 야만신이 저를 본다. 히비스커스는 희미하게 웃으며 속삭였다.
옆에 가서 앉는 건, 무리겠죠? 역시.
바람결에 실린 그의 향은 녹내음이 났으나 여직 푸르고 시렸다.
참으로 달가운 향이었다.
퍽 때늦은 생각이었다.
동부 다날란의 밤바람이 앉은 자리로 들이닥쳤다. 사막의 밤은 춥다고 하더니 정말로 공기가 시렸다. 불타는 장벽 너머로 사라지는 바람의 흔적을 쫓던 히비스커스는 거리를 두고 앉은 사내를 돌아보았다. 녹슬 것 같은 투구는 벗어서 제 옆에 내려둔 채였다. 자신의 제안으로 해제한 무장이었고 그 덕에 히비스커스는 알레트의 옆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있었다. 밤그늘이 묻었기에 시야가 선명하지는 않았다. 역으로 말하면 자신에게도 어둠이 내렸을 것이란 뜻이었다. 그것만큼은 조금 달가웠다. 자신이 그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그가 알아채기 힘들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알레트는 이곳보다는 설원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설원의 고목같은 사람이 모래땅에서 쉬어간다는 아이러니함. 사막의 더위에 노출되었으니 녹지 않았을까. 허튼 생각 또한 잠깐 들었다. 얼음이 녹아 물이 되면, 추위에 익숙해진 고목의 창과 투구에 그 물이 스미리라. 철에 물이 닿으면 녹이 슬기 마련이다.
아니, 사실은 이미 녹이 슬어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때늦은 생각이었다. 우르드의 샘에서 깨어난 직후 그가 보였던 모든 모습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전부 알고 있던 것보다 조금 다른 모습들이었다. 그래도, 그럼에도 사실은 아무래도 다 좋았으므로.
샘에서 부활한 야만신이 별의 바다를 항해함을 그만두고 약속을 지키러 와준 것만으로 충분했다.
녹이 슬었다면 더 부식되기 전에 기름칠을 하고, 녹을 닦아내어 빛나게끔 노력하면 된다. 퇼지도 모른다. 사실 안 되어도 좋을 것이다. 녹슨 건 녹슨 것 나름대로 아름답다. 아주 오래된 성의 정원이 덤불이어도 좋듯이, 낡은 양피지에 적힌 어떤 이름들이 사랑스럽듯이.
녹이 슨 관계라도 좋을 욕심이었다. 이름처럼 남몰래 간직한 어떤 욕망이 빚어낸, 처음으로 품은 욕심.
어둠 속에서 침묵을 간직한 채 부동하는 사내를 가만 보던 중에, 히비스커스는 문득 그를 불렀다.
알레트?
그러면 어둠이 움직이고. 별빛을 업은 용기사이자 야만신이 저를 본다. 히비스커스는 희미하게 웃으며 속삭였다.
옆에 가서 앉는 건, 무리겠죠? 역시.
바람결에 실린 그의 향은 녹내음이 났으나 여직 푸르고 시렸다.
참으로 달가운 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