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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난로 앞

눈을 뜨자 말하지 못한 말들처럼 조용히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이미 눈이 한참 쌓일 대로 쌓인 설원에, 여름꽃이 서 있었다. 바람이 볼을 어루만지고 지나간다. 히비스커스는 눈을 가늘게 떴다. 차가워야 하는데, 하나도 차갑지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눈을 향해 손을 내밀어본다. 사방이 고요한 가운데 내리는 눈에는 오로라와 별빛이 섞여 있었다. 히비스커스는 이것이 꿈인 줄 그제야 알았다. 붉거나 파란, 혹은 오로라와 별이 떨어지는 중에 알레트는 등을 보인 채 서 있었다. 당신 위로 오로라와 별이 한아름 쏟아졌는데, 그것들은 곧 눈이 되었다. 어깨 위로 눈이 켜켜이 쌓이는 동안 당신은 그것들을 하염없이 온몸으로 받으면서도 미동이 없었다. 다만 먼 지평선만을 한참 바라보고 서 있을 뿐이었다.

  알레트.

  나는 당신의 등을 보다가 당신의 이름을 부른다.
  그러면 당신은 뒤를 돌아본다. 수수께끼 같은 얼굴이 나를 본다.

  오로라를 그리도 많이 받았으면서 빛보다는 어둠이 더 깊은 얼굴이었다. 창백한 피부는 맑은 하늘에서 내리는 눈 덕에 시리고도 더 푸르렀다. 당신이 웃는지 아닌지, 알 수가 없다. 당신의 얼굴엔 가면이 없었지만 가면을 쓴 것만 같이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하지만 아주 묘한 비밀이 숨겨진 듯한 얼굴을, 나는 좋아했다. 아주 깊게 얽혀 있는 푸른 덩굴미로. 답을 찾지 못해 헤매어도 영영 좋을 곳.

  꿈에서 깨었을 때, 수수께끼를 닮은 당신을 떠올리며 가장 먼저 생각했다.
  당신에게, 약속한 꽃다발을 주어야지.

  나에게도 비밀이 하나 있다.
  오래 전부터 당신에게 전하고 싶었던 내 이름의 의미이자, 당신에게 주고 싶은 꽃다발의 꽃들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나 홀로 품은 욕심임을 잘 알아서 온 세상의 별빛이 사라지기 전에는 말하지 않으려고 했었다. 그래서 오래토록 간직하고 있었다.
  하염없이 입술에서 꽃잎이 흘러 넘쳐도, 그저 웃고 삼키고 짓이기며 있었다.

  나와 당신은 친구이고, 거기서 더 나아가서 나는 관계를 망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당신을 지킬 수 있다면 그걸로 족했다.

  그런 꿈을 꿨다.
  알고 지냈던 사람의 부고를 들은 다음날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