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은 본능적으로 3층을 향해 뛰어 내려갔다. 302호 여자임에 틀림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반 계단 정도 내려가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301호의 문이 활짝 열려 있는 모습이었다. 그곳에선 다락방 소녀가 연습을 하고 있었다는 생각에 미치자 시원은 마음이 급해졌다.
301호 안에서는 여자의 울부짖는 소리와 함께 소녀의 짧은 비명이 들리고 있었다. 시원은 자신의 방문을 막무가내로 두들기던 여자를 떠올렸다. 정신이 나간 여자는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거주자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반쯤은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자신의 책임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을 떠나서 302호 여자는 간간히 물건을 부수는 행태를 보이곤 했으므로, 어쩌면 소녀가 다칠지도 몰랐다. 그렇게 된다면 책임보다야 소녀에게 301호를 추천해줬던 자신에 대한 죄책감으로 한참을 시달릴 것을 시원은 알았다. 시원이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301호 안에서는 뭔가 뒤엉키는 소리와, 바닥에 질질 끌리는 소리가 났다. 시원은 301호 안으로 뛰어들었다.
피아노와 가까운 바닥에 두 여자가 한데 엉켜 있었다. 정확히는 소녀의 다리에 여자의 팔이 얽힌 채였다. 소녀는 여자의 악력을 이기지 못하고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여자의 팔은 점점 소녀의 발목에서 무릎으로 올라갔고 이내 그 가느다란 기둥을 부술 듯이 팔로 꽉 안았다. 소녀는 겁에 질려 여자를 밀어내려 들었지만 쉽지는 않아보였다. 시원은 302호 여자를 소녀에게서 떼어내기 위해 가까이 다가갔다. 하지만 뒤에서 인기척이 들리자마자 302호 여자의 다리가 기린의 뒷발처럼 허공을 휘저었다. 시원은 함부로 다가갈 수 없다는 걸 알고 주변을 빙빙 돌다가 소녀를 끌어내면 되지 않겠는가 싶어, 소녀 쪽으로 돌아가 그녀를 잡아당겼다. 하지만 302호 여자가 워낙 세게 매달려 있었던 탓에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시원은 소녀가 아파하는 것을 느끼고 그녀를 다시 바닥에 내려놓았다. 달라진 건 없었다. 소녀는 여전히 여자를 밀어내고 있었고, 여자는 그녀로부터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고통스러운 신음과 울음소리가 빈 공간을 가득 메웠다. 그 소리들은 구름을 뒤흔들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흐렸던 하늘로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문득 소녀가 여자를 밀어내던 것을 멈췄다. 여자는 소녀의 무릎에 얼굴을 묻은 채, 어깨를 떨고 있었다. 소녀는 아마 그것을 보았던 모양이었다. 시원은 소녀가 여자를 향해 고개를 숙이는 걸 보고 있었다. 위험할지도 모른다고 말해야 했는데, 이상하게도 그 순간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소녀는 고개를 살짝 비틀어 귀를 그녀 가까이 가져갔다.
여자는 몸을 떨며, 울면서 뭐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외국어였던 탓에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단 하나 명확한 것은 그녀의 입 밖으로 나오는 것 중 하나는 누군가의 이름이었다. 웅얼거리는 것처럼 들리기만 했던 모든 울부짖음이 하나의 이름이었던 것이다. 아마 딸의 이름이리라.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시원은 에바에게 301호와 피아노 이야기를 했을 때 그녀가 302호 여자와 딸의 이야기를 잠깐 입에 올렸던 걸 기억했다. ‘그 집 딸 것이었죠.’ 과거형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결코 좋은 이야기는 아니었을 터였다. 시원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제야 좀 알 것 같았다. 추측일 뿐이지만 어쩐지 확신이 들었다.
피아노와 이젠 없는 여자의 딸, 피아노가 있는 301호와 소녀.
우연치곤 기묘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때, 여자가 붙잡고 있던 소녀의 마른 어깨가 잘게 떨렸다. 곧 소녀의 입술로부터도 신음소리가 떨어졌다. 여자의 울음은 전염병처럼 소녀에게 옮아들었다. 소녀의 코끝으로부터 투명한 눈물이 툭툭 떨어져, 여자의 까만 머리카락 속으로 스미기 시작했다. 곧 소녀의 손이 여자의 어깨를 꽉 감쌌다. 소녀의 고개는 꽃대처럼 푹 꺾여 있었다. 머리카락이 우수수 쏟아져 여자의 머리를 담요처럼 덮었다.
곧 소녀의 입술이 엄마를 부르기 시작했다. 엄마, 엄마. 연신 어미를 부르는 목소리엔 울음기가 가득했다. 두렵고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애초에 그래서 터뜨리는 울음소리도 아니었다. 시원은 알 수 있었다. 그건 사랑하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제때 하지 못한 자들의 울음이었다.
여자의 소녀의 울음소리는 점점 커져갔다. 쏟아지는 빗소리에 묻힐 법도 하건만, 이상하게도 그 울음소리들만은 분명하게 들렸다. 시원은 눈물이 날 것 같은 것을 겨우 참아냈다. 제 가슴이 요동치고 있었다. 울음소리가, 뒤흔들고 있었다.
비는 밤늦게야 그쳤다. 에바에게 모든 일을 보고한 끝에 시원은 302호 여자가 비행기 사고로 딸을 잃었다는 걸, 그리고 다락방 소녀 또한 부모가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런 이야길 하면서 에바도 지나가던 투로 덧붙였다. 나도 아들을 잃었어요. 그래서 302호 여자를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고 해서, 돈도 못 내는 여자를 계속 내버려 두고 있는 거죠. 동질감인걸까, 단순한 연민인걸까. 알 수는 없네요. 그 때의 잎담배 냄새가 유독 독했던 것도 같다. 담배연기를 맡으며 시원은 아무것도 몰랐을 때 그녀를 함부로 생각했던 걸 조금 후회했다.
시원은 전화가 하고 싶었다.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있었던 일을 말하고 싶었다. 이 건물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 그리고 그 사람들이 품고 있는 어떠한 사랑 혹은 결핍의 형태들이 뒤섞여 굴러가고 있는 이 건물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 아니, 어머니에게 뭐라도 좋으니 다 말하고 싶었다. 이전보다 더 많은 말을 말이다.
시원은 시계를 보았다. 새벽 2시였다. 한국은 저녁 여섯시쯤 됐으리라. 전화를 해도 문제없을 시간이었다. 시원은 더 고민하지 않고 전화기를 들었다. 절차에 맞게 전화번호를 하나하나 누르고 기다렸다. 얼마 가지 않아 그의 어머니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시원이니? 네, 어머니, 저예요. 시원은 눈두덩이 뻐근해지는 걸 느끼며 간단한 안부를 물은 뒤에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어머니, 있잖아요, 오늘요…… 두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은 여전히 짧았고, 할 말은 많았던 탓에 시원은 모든 것들을 뭉뚱그려서 빠르게 전해야했다. 잘 알아듣지 못할 법도 한데 그의 어머니는 인내심 있게 그의 말을 다 들어주고 있었다. 시원은 그러다가 문득 그런 것들보다 더 해야 하는 말이 있다는 걸 알았다. 시원은 잠깐 말을 끊었다가 심호흡을 했다. 왜 그러니, 아들? 그의 어머니가 다정하게 물어왔다.
시원은 그제야 하지 못했던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여전히 세 음절, 일곱 글자의 그 말은 바다 속에 가라앉은 배처럼 무거웠다. 그러나 이번엔 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그러자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시원은 입을 열었다.
어머니, 있잖아요…….
301호 안에서는 여자의 울부짖는 소리와 함께 소녀의 짧은 비명이 들리고 있었다. 시원은 자신의 방문을 막무가내로 두들기던 여자를 떠올렸다. 정신이 나간 여자는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거주자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반쯤은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자신의 책임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을 떠나서 302호 여자는 간간히 물건을 부수는 행태를 보이곤 했으므로, 어쩌면 소녀가 다칠지도 몰랐다. 그렇게 된다면 책임보다야 소녀에게 301호를 추천해줬던 자신에 대한 죄책감으로 한참을 시달릴 것을 시원은 알았다. 시원이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301호 안에서는 뭔가 뒤엉키는 소리와, 바닥에 질질 끌리는 소리가 났다. 시원은 301호 안으로 뛰어들었다.
피아노와 가까운 바닥에 두 여자가 한데 엉켜 있었다. 정확히는 소녀의 다리에 여자의 팔이 얽힌 채였다. 소녀는 여자의 악력을 이기지 못하고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여자의 팔은 점점 소녀의 발목에서 무릎으로 올라갔고 이내 그 가느다란 기둥을 부술 듯이 팔로 꽉 안았다. 소녀는 겁에 질려 여자를 밀어내려 들었지만 쉽지는 않아보였다. 시원은 302호 여자를 소녀에게서 떼어내기 위해 가까이 다가갔다. 하지만 뒤에서 인기척이 들리자마자 302호 여자의 다리가 기린의 뒷발처럼 허공을 휘저었다. 시원은 함부로 다가갈 수 없다는 걸 알고 주변을 빙빙 돌다가 소녀를 끌어내면 되지 않겠는가 싶어, 소녀 쪽으로 돌아가 그녀를 잡아당겼다. 하지만 302호 여자가 워낙 세게 매달려 있었던 탓에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시원은 소녀가 아파하는 것을 느끼고 그녀를 다시 바닥에 내려놓았다. 달라진 건 없었다. 소녀는 여전히 여자를 밀어내고 있었고, 여자는 그녀로부터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고통스러운 신음과 울음소리가 빈 공간을 가득 메웠다. 그 소리들은 구름을 뒤흔들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흐렸던 하늘로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문득 소녀가 여자를 밀어내던 것을 멈췄다. 여자는 소녀의 무릎에 얼굴을 묻은 채, 어깨를 떨고 있었다. 소녀는 아마 그것을 보았던 모양이었다. 시원은 소녀가 여자를 향해 고개를 숙이는 걸 보고 있었다. 위험할지도 모른다고 말해야 했는데, 이상하게도 그 순간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소녀는 고개를 살짝 비틀어 귀를 그녀 가까이 가져갔다.
여자는 몸을 떨며, 울면서 뭐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외국어였던 탓에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단 하나 명확한 것은 그녀의 입 밖으로 나오는 것 중 하나는 누군가의 이름이었다. 웅얼거리는 것처럼 들리기만 했던 모든 울부짖음이 하나의 이름이었던 것이다. 아마 딸의 이름이리라.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시원은 에바에게 301호와 피아노 이야기를 했을 때 그녀가 302호 여자와 딸의 이야기를 잠깐 입에 올렸던 걸 기억했다. ‘그 집 딸 것이었죠.’ 과거형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결코 좋은 이야기는 아니었을 터였다. 시원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제야 좀 알 것 같았다. 추측일 뿐이지만 어쩐지 확신이 들었다.
피아노와 이젠 없는 여자의 딸, 피아노가 있는 301호와 소녀.
우연치곤 기묘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때, 여자가 붙잡고 있던 소녀의 마른 어깨가 잘게 떨렸다. 곧 소녀의 입술로부터도 신음소리가 떨어졌다. 여자의 울음은 전염병처럼 소녀에게 옮아들었다. 소녀의 코끝으로부터 투명한 눈물이 툭툭 떨어져, 여자의 까만 머리카락 속으로 스미기 시작했다. 곧 소녀의 손이 여자의 어깨를 꽉 감쌌다. 소녀의 고개는 꽃대처럼 푹 꺾여 있었다. 머리카락이 우수수 쏟아져 여자의 머리를 담요처럼 덮었다.
곧 소녀의 입술이 엄마를 부르기 시작했다. 엄마, 엄마. 연신 어미를 부르는 목소리엔 울음기가 가득했다. 두렵고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애초에 그래서 터뜨리는 울음소리도 아니었다. 시원은 알 수 있었다. 그건 사랑하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제때 하지 못한 자들의 울음이었다.
여자의 소녀의 울음소리는 점점 커져갔다. 쏟아지는 빗소리에 묻힐 법도 하건만, 이상하게도 그 울음소리들만은 분명하게 들렸다. 시원은 눈물이 날 것 같은 것을 겨우 참아냈다. 제 가슴이 요동치고 있었다. 울음소리가, 뒤흔들고 있었다.
비는 밤늦게야 그쳤다. 에바에게 모든 일을 보고한 끝에 시원은 302호 여자가 비행기 사고로 딸을 잃었다는 걸, 그리고 다락방 소녀 또한 부모가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런 이야길 하면서 에바도 지나가던 투로 덧붙였다. 나도 아들을 잃었어요. 그래서 302호 여자를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고 해서, 돈도 못 내는 여자를 계속 내버려 두고 있는 거죠. 동질감인걸까, 단순한 연민인걸까. 알 수는 없네요. 그 때의 잎담배 냄새가 유독 독했던 것도 같다. 담배연기를 맡으며 시원은 아무것도 몰랐을 때 그녀를 함부로 생각했던 걸 조금 후회했다.
시원은 전화가 하고 싶었다.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있었던 일을 말하고 싶었다. 이 건물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 그리고 그 사람들이 품고 있는 어떠한 사랑 혹은 결핍의 형태들이 뒤섞여 굴러가고 있는 이 건물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 아니, 어머니에게 뭐라도 좋으니 다 말하고 싶었다. 이전보다 더 많은 말을 말이다.
시원은 시계를 보았다. 새벽 2시였다. 한국은 저녁 여섯시쯤 됐으리라. 전화를 해도 문제없을 시간이었다. 시원은 더 고민하지 않고 전화기를 들었다. 절차에 맞게 전화번호를 하나하나 누르고 기다렸다. 얼마 가지 않아 그의 어머니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시원이니? 네, 어머니, 저예요. 시원은 눈두덩이 뻐근해지는 걸 느끼며 간단한 안부를 물은 뒤에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어머니, 있잖아요, 오늘요…… 두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은 여전히 짧았고, 할 말은 많았던 탓에 시원은 모든 것들을 뭉뚱그려서 빠르게 전해야했다. 잘 알아듣지 못할 법도 한데 그의 어머니는 인내심 있게 그의 말을 다 들어주고 있었다. 시원은 그러다가 문득 그런 것들보다 더 해야 하는 말이 있다는 걸 알았다. 시원은 잠깐 말을 끊었다가 심호흡을 했다. 왜 그러니, 아들? 그의 어머니가 다정하게 물어왔다.
시원은 그제야 하지 못했던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여전히 세 음절, 일곱 글자의 그 말은 바다 속에 가라앉은 배처럼 무거웠다. 그러나 이번엔 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그러자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시원은 입을 열었다.
어머니, 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