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로 돌아가기
5화: Villa memoria #05
402호 남자는 의대생이라고 했다. 늙은 건물주, 에바가 조금 늦게 말해준 것이었다. 그를 처음 제대로 마주하게 된 건 역시 다락방 소녀에게 무리하게 다그치던 때로, 그의 직업 이야길 듣자마자 시원은 그것 때문에 그렇게 휴식에 집착했던 모양이라 여겼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여전히 그를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안 들었다. 젊은 사람이 그렇게 좀팽이같이 구냐는 인상만 남았을 뿐이다. 정확한 나이는 몰랐다. 늘 얼굴에 인상을 쓰고 다니는 것만 아니면 누가 20대 초반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젊어서 대강 어느 정도겠다 짐작만 할 뿐이었다. 그렇게까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국적에는 좀 관심이 갔는데,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시원과 같은 한국인이었던 것이다. 밤 느즈막이 돌아와 담배 있냐고 물어보는 것에 자긴 담배를 안 피운다고 대답했을 때, 그가 한국어로 욕을 해서 알았다. 물론 그 전에 눈치로 좀 알아채고는 있었지만 그렇게 거친 방식으로 확인사살 당할 줄은 또 몰랐기 때문에 시원은 똑바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가 그날 중얼거렸던 말은 ‘씨발, 이 시간에 사러갈 수도 없고.’였다. 다시 생각해도 입이 참 걸은 사람이다.

  걸쭉한 입담의 소유자는 친화력이 좋지도 않았다. 관리인이 되고 난 후 쭉 지켜보았지만 그는 애초에 사람을 필요이상 가까이 대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401호 남자가 우아한 오만함으로 무장한 사자 같은 인상이라면, 402호 사내는 털이 거칠고 곧잘 이빨을 드러내는 야생늑대와 닮았다. 그는 눈이 마주치면 일단 인상을 쓰고, 302호의 정신 놓은 여자가 발작하기 시작하면 제일 먼저 질색한다. 그런 주제에 아주 치밀해서 정도 이상으로 사람을 도발하거나 화를 돋우지는 않는다. 모나지 않을 만큼의 예의를 차리고, 사람과의 교류가 적은 만큼 주변은 깔끔하고 끝은 확실히 맺는다. 그런 중에 조금이라도 타인이 제 선을 넘어오면 바로 까칠한 태도로 일관해서 남을 밀어낸다. 일전의 다락방 소녀 사건이 좀 특이했을 뿐이다.

  결국 한 줄로 평하자면 ‘굉장히 예민해서 성가신 사람’인 것이다.
  성가신 사람과 얽히는 게 퍽 좋은 일은 아니다. 하지만 시원은 어쩔 수 없이 얽힐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었다. 그는 이 작은 건물의 경비원이었고, 살다보면 여러 가지 일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게다.
  시원은 상념을 털어냈다. 밝은 햇살에 취해 시간만 죽이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환기를 시켜야 했다. 며칠 새 비가 와서, 물기를 머금은 나무벽으로부터 꿉꿉한 냄새가 나기도 했거니와 무엇보다 피아노가 사라진 301호에 새 주민을 맞는 날인 것이다. 
  그래서 시원은 환기를 하고자 문을 벌컥 열어 당겼다. 힘 있게 잡아당긴 건 제 나름 활력을 불어넣고자 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누군가에겐 그 행동이 도리어 재앙이었다.

  바깥에서 욕 섞인 탄성이 들렸다. 문 너머의 목소리는 분명히 402호 남자의 것이었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제 상념이 그를 불러오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시원의 머릿속에 이건 아니라는 불안감이 밀려온 그와 동시에 꽤 많은 액체가 바닥으로 추락하는 게 보였다. 철퍽. 시야는 까매졌고, 귓가도 먹먹해졌다. 

  “아, 씨발……”

  뒤이어 들려온 욕지거리는 예상대로 너무나도 익숙한 언어였다. 시원은 조금 뒤늦게 사내를 바라보았다. 노기 찬 눈빛이 시원을 그대로 꿰뚫는 듯 했다. 커피를 거의 다 바닥에 쏟아버렸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니, 돈 들여 산 커피가 절반 이상 바닥에 쏟아지는 건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제 잘못이 확실해서 시원은 그저 죄송하다며 머리만 몇 번이고 숙였다가, 눈을 똑바로 마주한 채 제 잘못을 인정하는 쪽이 더 낫겠다 싶어 허리를 바로 폈고 곧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제 진심을 전하기 위해 애썼다.

  “정말 죄송합니다. 환기를 하려다가 그만…….”

  남자는 여전히 굉장한 인상을 쓴 채로 시원을 노려보다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와 빈 커피잔을 내밀었다.

  “됐으니까 이거 좀 버려주시죠.”
  “예?”
  “버려달라고요. 어차피 이거 청소할 거 아닙니까?”

  시원은 커피잔을 얼떨떨한 얼굴로 받아들었다. 커피는 정말로 거의 바닥나 있었다. 뭘 어떻게 쏟았으면 이 정도로 커피가 다 빌 수 있는 거지? 그 물음은 커피주인에게서 의외의 방향으로 나왔다.

  “까만 티라 망정이었지, 아오, 관리인이고 나발이고 씨발 진짜……”

  입고 있던 까만 반팔 티에 나머지를 쏟은 것 같았다. 뜨겁다는 비명소리가 없었으니 식은 커피였을 터다. 한편으론 다행이었다. 그 와중에 커피주인은 자신이 그 욕을 못 알아들을 거라 생각하고 계속 한국어로 욕을 지껄였는데 참 유감이었다. 시원은 목 위로 차오른 다 알아듣고 있다는 말을 삼키고 얌전히 대걸레를 가져와 바닥을 닦기 시작했다. 샷을 얼마나 넣은 건지 커피는 시커멨다. 다 닦고 나서도 커피냄새가 나는 것 같아서 시원은 문을 더 열어 놓기로 했다. 에어컨도 없는 복도는 금세 후덥지근해졌다. 그래도 제 방에 박혀있는 것보단 나았다. 통풍이 슬슬 되기 시작하면 에어컨 같은 건 없어도 되는 것이다. 그늘진 한 쪽 구석에 놔둔 나무의자에 삐걱대며 앉은 시원은 문을 바라보았다. 액자처럼 길게 네모진 문간 너머에는 햇살이 가득했다. 이사 들어올 사람은 참 날도 잘 잡았다 싶었다. 따스한 온기가 발치에 와 저를 다독였다. 그래서 그런지 아까 전에 한참 욕을 먹은 것도 금방 털어낼 수 있었다. 그러자 상한 마음이 사라진 빈 공간에 졸음이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시원은 식물원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식물원은 온실이라기보다 정말 정원에 가까운 크기였고 하늘이 훤히 보였다. 바람이 솔솔 불어와 시원의 검은 머리카락을 간질였다가 멀어졌다. 멀어진 바람 끝에서는 짧은 단발머리 소녀가 들꽃처럼 서서 몸을 흔들고 있었다. 시원은 그 얼굴을 알고 있었고, 그와 동시에 자신이 지금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시원의 첫사랑이자, 아직까지 짝사랑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중학교 끝 무렵 때부터 오래 좋아했다. 유학 오고 나서는 한 번도 연락하지 못했다. 괜히 연락할 이유도 만들지 못해 더더욱 그랬다.

  --야.

  꿈에서는 소리를 내지 않았지만 시원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교복이 잘 어울리는 그녀가 시원을 돌아보면서 웃다가 손을 흔들었다. 그녀는 자신이 처음으로 반했던, 중학교 때의 얼굴을 하고 있다. 스스로를 내려다보면 저 또한 중학교 교복을 입고 있다. 가장 순수할 때의 마음을 간직한 채 시원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여태 웃고 있다. 웃음으로 상기된 붉은 뺨이 어여뻐서 한 번만 손으로 쓸어보고 싶은 마음에 시원은 손을 뻗었다. 문득 뻗은 손에 이질적인 감각이 느껴진다. 동시에 첫사랑이 시야에서 멀어졌다. 잠깐만이라 외치려 입을 열었으나 목소리가 나오는 대신, 시원의 몸이 휘청거렸다.
  그리고 식물원 바닥에 코를 처박는 게 아닐까 싶었던 순간 시원은 눈을 떴다.

  갑자기 걷힌 시야엔 제 신발이 있었다. 누군가 제 어깨를 짚어 제가 고꾸라지는 걸 막아준 듯했다. 천천히 고개를 들자 다정한 목소리가 귓가를 간질였다. 낯선 목소리였다.

  “좋은 꿈꾸고 계셨나 봐요, 웃으시던데.”
  “그, 네…… 죄송합니다.”

  “왜 죄송해요. 사람이 좀 잘 수도 있지.”

  시원은 얼떨떨한 얼굴로 그를 찬찬히 살폈다. 그는 그러거나 말거나 제 어깨에서 손을 떼고 뒷짐 진 채 웃고 있었다. 올라간 입꼬리 밑에 점 하나 있는 것도 특이했는데 꽤 미인이었다. 밀빛으로 염색한 머리까지 길러놓아 더 모호한 외모에 눈을 끔뻑이던 시원이 아, 하고 탄성을 터뜨렸다.

  “아, 혹시 오늘 301호에 들어오기로 하신……”
  “네에. 선요 유라고 해요. 미리 말해두지만 유는 ‘당신’이 아니라 성이예요. 편히 불러주세요.”

  꽤 특이한 이름이었다. 하지만 그보다는 타국 땅에서, 그것도 같은 건물에서 한국인을 또 만나게 될 줄은 몰라 그게 더 놀라웠다. 반가운 나머지 시원이 얼떨결에 말을 흘렸다.

  “어, 한국인이세요? 저도 한국인인데.”
  “진짜요?”

  눈을 동그랗게 뜬 선요가 환히 웃고는 악수하자는 듯 손을 내밀었다. 시원이 그의 손을 머뭇대다 마주 잡았다. 체온이 조금 낮은 사람인지 맞잡은 손이 차가웠다. 선요가 부드럽게 웃으며 재잘거렸다.

  “진짜 반가워요. 한국어로 편히 말해도 돼요. 나도 한국어로 말할래. 그래서 오빠는 이름이 뭐예요?”
  “혹시 그, 실례지만, 여성이신가요? 성정체성이라거나 그런 게……”
  “아녜요, 아, 역시 좀 그래요? 그러니까 이름 알려주세요.”

  남자인데 오빠라니, 정말 파격적인 호칭이 아닐 수 없었다. 어디 뭐 특이한 일이라도 하는 건지 아니면, 성적 취향과 관련된 건가? 퍽이나 무례한 생각을 하자마자 별안간 이 굉장한 친화력을 가진 남자에 대해 낯설어지는 것을 느끼며 시원이 대답했다.

  “시원이에요. 김 시원. 흔한 이름이죠.”
  “흔한 이름이 좋은 거예요, 어딜 가도 튀지 않거든요. 외국 땅에서는 소용없겠지만.”

  선요가 천천히 뒤쪽에 있던 캐리어를 끌며 어깨를 으쓱였다. 짐은 그게 다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아무리 가구가 있는 집이라곤 해도 이렇게까지 짐이 없어도 되나 싶다. 혹여 자살이라도 하려는 건가 싶어 꺼림칙해졌다. 그럴 낌새는 없을 것 같은 밝은 사람이지만 속내는 누구라도 모르는 법이니 조심해서 나쁘진 않을 것 같았다. 시원은 짐을 들어드리겠다고 말했으나 선요는 부드럽게 거절했다. 혼자 들 수 있다는 이유였다.

  계단을 올라가며 시원은 기본적인 안내사항 및 유의점을 설명했다. 이미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특성도 함께 말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선요는 맞은편 방에 사는 정신 나간 여자와 402호 남자에게 가장 관심을 보였다. 전자는 바로 이웃집이기 때문에, 후자는 같은 한국인이라고 말하면서 슬그머니 뒷담을 한 게 원인이리라. 

  “말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혹시라도 302호 여자분이 문제라도 일으키시면 다음날에라도 연락주세요.”
  “괜찮아요. 그런 거 신경 안 써요.”

  그 여자는 낮엔 조용한 편일 거라고 시원이 덧붙였다. 선요는 정말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어깨만 으쓱이고 더 할 말이 없다는 듯 굴었다. 그들이 올라갈 때마다 계단에서 삐그덕거리는 소리가 났다. 오래된 곳인 것 같다고 선요가 속삭였는데 날이 흐렸다면 괜히 소름이 끼쳤을 법도 할 정도로 은근한 크기였다.

  “아, 이 건물이요? 네, 좀 됐대요.”
  “외롭진 않겠어요.”
  “무슨 의미예요?”
  “오래 된 건물에 있으면 혼자 있어도 사람이 있는 것 같거든요.”
  “그거 유령 이야기예요?”
  “아, 아뇨! 유령이랑은 별개예요! 그냥 느낌만이요. 할머니 집에 돌아간 것 같은 포근한 느낌 있잖아요. 물론 밤에는 좀 그 포근함이 되려 무섭긴 하겠지만.”

  3층에 올라와서 왼쪽으로 몸을 틀려던 차에, 선요가 갑자기 위를 보며 어깨를 떨었다. 시원도 덩달아 그가 바라보는 쪽에 시선을 던졌다. 4층에서부터 막 내려오고 있는 402호 남자가 서 있었다. 선요는 예상치 못한 등장인물에 혼자 놀란 듯 했다. 시원은 위를 향해 못내 고개를 까닥여 인사했다. 그러면서 선요에게 속삭였다. 402호 남자예요. 선요가 그제야 눈을 깜빡이다 웃으며 입을 열었다. 문제는 그게 한국어라는 거였다.

  “안녕하세요, 저 오늘 이사 왔어요. 한국인이시라면서요?”

  둘을 무시하고 계속 발걸음을 내딛던 402호 의대생이 선요의 목소리에 멈칫하고 인상을 구겼다. 한국어를 들을 줄은 생각도 못했던 것 같았다. 시원은 지레 발을 저려서는 조금 창백한 얼굴로 입을 쩝 다셨다. 402호 남자 또한 사태를 금방 파악했는지 시원을 똑바로 노려보다 선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관리인으로부터 귀띔이라도 받았습니까?”
  “그런 셈이지요, 잘 부탁해요.”
  “네, 뭐.”

  그러나 누가 봐도 잘 부탁하든 말든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대답이었다. 다시 발을 옮기던 402호 남자는 시원의 옆을 지나가며 어깨를 부러 툭 쳤다. 순간적으로 시원의 머릿속에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한국인인 것을 왜 숨겼느냐 혹은 이때까지 내가 욕한 거 다 알아듣고 있었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음이 괘씸하다 기타 등등. 선요는 시원을 치고 지나가는 남자의 등을 한참 보다가 문고리를 돌렸다. 
  미리 열어두었기 때문에 걸리는 소리는 없었다. 새 가구를 들여놓은 탓인지 화학약품 냄새가 조금 났다. 시원이 뒤늦게 선요에게 열쇠를 내밀며 밤에 문을 잘 잠그라는 말도 덧붙였다. 선요는 말갛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선요는 들고 왔던 파란 캐리어를 안으로 굴려 넣고 제 몸도 문 안으로 밀어 넣었다. 시원은 이제 웬만한 할 일이 다 끝나지 않았나 해서 몸을 돌렸다. 문득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커피라도 쏟았어요? 로비에서 커피냄새가 나던걸요.”
  “아.”

  웃음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아무래도 환기를 더 해야 할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