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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화비화

하화당이라 불리는 별채는 대부분 조용한 나절을 보내곤 했다. 사람이 많지 않은 탓이기도 하였지만 화 씨가 기생이었던 신분을 잊어버린 것처럼 굴었기 때문이었다. 아주 오래토록 금 타는 소리나 노래 읊는 소리, 춤사위가 허공 가르는 소리마저 없었다. 하지만 별천지마냥 고요하던 곳도 화 씨에게 아들이 생긴 이후에는 생기가 돌았다. 어미는 어린 아들을 위해 제가 아는 걸 가르쳤다. 글이나 서예는 물론이요, 중인들이나 배울 법한 천한 재주들도 전부. 아이는 그 중에서 어미가 춤이나 노래하는 것을 가장 좋아했다. 

  자장가 불러주세요.

  어미는 춤이 번잡하여 잘 보여줄 수 없다 하였지만 노래는 조르면 언제든 불러주었다. 화 씨의 노래는 한밤의 물결처럼 잔잔하였으며 어둠처럼 깊은 구석이 있었기에 선요의 마음에 쏙 들었다. 밤마다 자장가를 조르는 것은 그 탓이리라.

  무얼 불러줄까.

  어미는 자장가를 불러달라 할 적에 늘 그렇게 물었다. 선요의 대답이 하나밖에 없을 줄 알면서도 그러했다. 아마 의무처럼 대답해주는 모양이었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거요. 이미 알고 있는 대답을 듣고 난 후에, 어미는 규칙적으로 오르내리는 선요의 가슴 위에 손을 얹고 천천히 다독이곤 했다. 따스한 도닥임과 더불어 파란 달빛이 손가락 끝에 묻는 걸 곁눈질로 보고 있으면 뒷뜰의 대나무 숲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이내 눈을 감으면 어미의 목소리가 바람결에 섞였다.

   꽃이면서 꽃 아니며,

  선요는 책을 좋아했다. 하화당을 벗어나서는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형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으니, 고작해야 어린 여동생과 놀아주는 것 정도가 다였다. 허나 몸이 약한 아이와 매일 놀아줄 수는 없는 법이었다. 하여 선요는 책을 읽었다. 책에는 수많은 것이 있었다. 오래 전에 있었다던 각종 고사와 그에 덧붙은, 혹은 이름난 시인들이 지은 한시, 괴이쩍은 요물들이 나온다는 잡스러운 이야기들...

  그러나 책에서만 보던 시에 노랫가락을 붙일 수 있다는 건 어미로부터 배웠다. 지금과 같은 시간을 통해서. 이게 뭐였더라. 그러니까.

  안개이며 안개 아니어라.

  누군가의 시였는데.

  밤 깊어 왔다가, 날 밝아 떠나가더라.

  하지만 그게 누구의 시이든 무슨 상관일까. 선요는 누군가가 자신을 위해 자장가를 불러준다는 사실이 기꺼웠다. 그것이 제 하나뿐인 어미라는 사실은 소년을 더욱 행복하게 만들었다. 잠든다는 것은 작은 죽음과 같아서, 무방비나 다름없다. 깊이 잠든 자에게 칼을 겨눈들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 누군가가 잠들 때까지 기다려준다는 건, 그만큼 그 사람을 아낀다는 것.

 

 

 

  그러니까 아마도,
 
  자장가 불러줄까?

  그에게 그런 작은 호의를 베풀고자 했던 것은 당신이 자신에게 그런 사람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어서일 거라고.
  당신이 자신에게 있어서 어느샌가, 그렇게나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었다는 걸, 전하고 싶어서.

  이건 의무나 보답으로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다. 서로 날 선 채 마주하고 있다가 제 앞에서만 그 날이 무디어 간다는 걸 어느샌가 알았다. 저만이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어설프게 피어난 상냥함과 저만을 위해서 마련한 작은 방석. 자신이 거기에 앉을 수 있을 정도로 정갈한 사람이 아님을 앎에도 여전히 그것들을 마련하고 있던 사람이 사랑스러워졌기 때문에.

 거절해도 상관없어, 전하고 싶은 마음만은 진실하니까.

 

 

백거이, 화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