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슬라브) 신화 속에서 전해지는 뱀파이어, 늑대인간 등의 이야기를 담은 책.
상대적으로 유명하지 않은 슬라브족의 이야기라서 그런가, 새로운 이야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즐겁게 읽었음.
소재에 관한 설화 -> 조금 더 깊이 읽는 파트
이런 구조로 반복되는 책이라 재미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좀 더 알 수 있는 방향이 있어서 좋았음.
뱀파이어
우리에겐 드라큘라로 너무 익숙한 소재. '박쥐' 가 아니라 '검은 나비(나방)' 과 관계가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사이가 나쁜 두 마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한 청년의, 사랑하는 여자를 얻기 위한 이야기가 메인 줄기인데, 뱀파이어가 된 90년 전의 악인, 사바 사바노비치를 마을 사람들과 힘을 합쳐 해치우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늑대인간
아니 이 이야기... 해피 엔딩이 아니라니 좀 충격... 일가족 몰살사건 아이가?! 그 와중에 사랑하는 사람 두고 일단 체면 챙긴 후작 어이 없고... 마 니 그거 찐사랑 아이다!!! 결말이 좀 무섭다... 뒤늦게 여자 찾으러 갔더니 그 집에 혼자 남은 여자... 그리고 '다른 가족은 어딨소?' 라고 물었더니 '아주 가까이에 있어요...' 라고 대답한 여자라니 이 얼마나 공포적 열린 결말인가...
번외로 사실 늑대인간 설화는 생각보다 뱀파이어랑 굉장히 밀접했구나 싶었다. 동시에 착한 늑대인간 이야기도 있는 걸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다모증 환자가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은 너무 단편적이지 않나 싶기도 하고.
리부셰 여왕
예언 능력을 가진 여왕이 사랑하는 연인(그러나 농부인)과 이어지기 위해 지혜롭게 처신하는 이야기. 보통은 남녀 관계가 뒤바뀌어 있다는 점이 제법 신선하게 다가왔다. 더 놀라운 점은 이게 체코-프라하의 건립신화(?) 같은 이야기로 전해져 오고 있었다는 점이다... 신선한 해피엔딩이란 점에서 즐겁게 읽음. 여성 건립자가 아주 매우 드물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러나 리부셰 역시 백성을 만족시키기 위해 남편을 맞이해야 했다는 점 < 이라는 대목을 보고 마냥 즐겁지만은 못했다.
부유한 여성들이 사원이나 수도원을 설립하는 일은 비잔틴제국의 관습이었고, 그 결과 여성 크티토르ktitor는 발칸반도 전역에 널리 알려져 있다. 많은 경우 과부들은 수도원으로 물러나 남은 재산을 가져와 일종의 지참금처럼 기부했으며, 재력이 충분한 과분은 직접 사원을 세우기도 했다. 무언가를 건립하는 주체로서의 여성상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어딘가에 갇히거나 벽에 둘러싸인 여성의 초상도 존재한다. 이는 과거 슬라브족의 장례식에서 과부를 제물로 바쳤던 인신 공양의 풍습이 집단적인 기억으로 남은 결과다. (...) 이 이야기에서 갓 결혼한 세 형제는 성곽도시를 세우려 하지만 번번히 실패한다.이후 그들은 신부를 제물로 바쳐야만 도시를 완성할 수 있으리라는 계시를 받는다. 계시에 따르면 그녀는 성채의 탑 안에서 벽으로 둘러싸인 채로 갇혀 있어야 했고, 돌벽에 난 작은 창을 통해 죽어가는 동안에도 자신의 아기에게 모유를 먹일 수 있었다. (....) 이처럼 소름 끼치는 여성 혐오적 결말은 가부장적 전통의 일부일 뿐이다. 방식은 훨씬 덜 섬뜩했지만, 리부셰 역시 백성을 만족시키기 위해 남편을 맞이해야 했다. 안타깝게도 신화 속 여성들은 빈번히 무시되거나,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희생된다.p.176
바바 야가 이야기
아름다운 바실리사 아가씨가 친모의 마법 인형 덕분에 계모와 의붓 언니들의 괴롭힘을 이겨내는, 신데렐라 혹은 콩쥐팥쥐 같은 이야기. 정말 세계 전역에 비슷한 이야기가 전해져 오는구나 싶었다. 마법 인형은 콩쥐의 두꺼비 같은 역할을 하고, 바바 야가는 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유바바 같은 존재. (진짜 비슷하기도 하다...) 빵 한 조각이랑 음료 한 모금을 주면 살아 움직이는 인형이라니 너무 탐날 뿐이고... 집안일 해죠... (ㅋㅋ) 근데 이야기 결론쯤이 좀 충공깽. 바바 야가에게 얻은 불이 두개골에 담겨진 건 그러려니 하는데... 불 담긴 해골이 얻은 불로 계모랑 언니들 있는 집 태워줄게 ㅋㅋ 의 뉘앙스를 가진 대사 칠 땐 '우와...' 싶었음...
페룬
오... 솔직히 말해서 그냥 영웅 스토리인데 재미없음... 내용도 기억 안 남...
물의 괴물
류블랴나! 익숙한 이름이 나와서 살짝 흥미진진. 유럽 여행 할 때 여기 살짝 들렀었는데 아담하고 예쁜 동네였다. 내 나무목각 쥐, 루디는 여기서 왔지. 아름답지만 오만한 아가씨가 워터맨에 의해 강물로 사라지는 이야기. 처녀가 괴물에게 납치(혹은 자의) 되는 이야기도 세계 전역에서 다양하게 보여지고 있는 걸 생각하면 신기하기도 하다.
불새
수양아들이랑 수양딸 각각 13명씩 둔 마법사 차르네 막내, 이반 왕자가 왕 되는 이야기...... 아니 이 이야기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옛날에 읽어본 적 있는 것 같지만 디테일이 다르다. 역시 이것도 비슷한 신화 어쩌고와 일맥상통하나보다. 아니 근데 너무 자연스럽게 말 죽이는 거 아니냐!!!!!!!!!!!!!
"불멸의 코셰이는 영혼이 몸 안에 있지 않기 때문에 죽지 않는 거야. 그자가 자기 영혼을 숨겨놨지만, 내가 그 위치를 알고 있지. 그것은 속이 텅 빈 통나무에 숨겨진 상자 속에 숨은 산토끼 속에 숨은 오리 안에 숨겨진 알의 안쪽에 감춰진 바늘의 귀 안쪽에 있어."
이반 왕자가 의아해했다.
"오리가 어떻게 산토끼 안으로 들어간 걸까?"
차레브나가 대답했다.
"그런 멍청한 질문은 하지 말고."p.274
"토끼 속에 있는 오리의 안에 있는 알을 깨야 해."
이반이 막막해하며 물었다.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하는데?"
"대체 어쩌다 이런 남자들이 세상을 다스리게 된 걸까?"
차레브나가 다 들릴 정도로 크게 중얼거렸다.p.276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근데 차레브나가 양누나라며 근데 왜 차레브나랑 결혼하는거임 이거 괜찮은거임? 아무리 양누나라도?
결론
약간은 섬뜩하면서도 흥미진진한 동유럽 신화 및 민담을 조금이나마 맛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이야기 - 심화지식 구조로 반복돼서 이야기의 소재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분들도 만족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일단 저는 그저 도파민만 추구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 부분은 살짝 지루했어요. 신화/민담 부분은 우리에게 익숙했던 서유럽의 이야기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맛이라서 조금 더 새로웠는데 동시에 생각보다 진짜 동유럽의 이야기는 우리에게는 많이 전해지지 않았구나 싶었네요. 여태 이야기 자체가 아니라 소재로서만 내 안에서 존재해 왔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에요. 뱀파이어나 늑대인간 이야기의 원류가 동유럽 신화에 있었다는 걸 모르진 않았는데 새삼 이야기로 읽으니까 제법 차이나는 부분들도 있었거든요. 읽으면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리부셰 여왕 파트였어요. 여성 지도자에 대한 이야기인데 동시에 여성이 어떻게 무시돼 왔는지도 알 수 있었던 파트여서 깨달음이 컸습니다. 별개로 바바 야가 이야기도 재미있었어요. 근데 결말이 좀 충공깽... 좀 더 다양한 이야기의 맛을 보시고 싶다면 한 번쯤 읽어보시는 것도 추천하고 싶어요!